신은보 교무
신은보 교무

[원불교신문=신은보 교무] “내 이름은 루카 이층에 살아요. 당신 집 위층이죠. 그래요. 전에 날 본 적 있을 거예요. 한밤중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어떤 다툼, 어떤 싸움 소리가 들려도 그게 뭐였는지 내게 묻지 마세요….” 아동학대를 고발한 수잔 베가의 LUCA라는 노래이다. ‘그 사람들(they)’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나에게 묻지 말아달라는 위층 집 아이 루카의 심정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아이에게 사람들은 “너 괜찮니?”라는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다. 과연 그 아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폭력을 행사한 부모뿐만 아닌 관심 없는 이웃들,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사람들, 바로 비정의와 이기로 뭉친 사회공동체가 ‘그 사람들’이며, 지금 우리들이다. 

서울에서 수학하던 중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보습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허름한 간판에 좁은 교실에서 7명 정도의 초등학생들의 영어를 가르쳤던 필자에게 유독 말없이 긴 머리를 늘어뜨렸던 수줍음이 많았던 3학년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바지 길이와 소매가 짧아지던 이맘때 어느 날, 멍들고 상처 난 흔적들을 애써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치켜뜬 눈으로 응시하던 그 아이의 시선이 가슴 한 켠을 아프게 스쳐간다. 매 수업마다 수업 후 나눠주던 동전 초콜릿을 하나 더 가져가도 되냐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어보곤 했다. 그 아이에게는 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정답을 쓰지 못해도 늘 초콜릿을 손에 쥐어줬고, 어느 날 갑자기 학원을 그만둔 아이가 남긴 영어 문제집에 사람의 얼굴이 나온 곳마다 X표시가 그어진 것을 확인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며 다시금 떠오른다.  

미국과 호주의 경우 1970년 초반부터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법’(CAPTA)을 제정해, 24시간 긴급전화를 개설하는 아동학대 전담 경찰을 두고 공공기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경찰서에 상주한다. 주정부와 민간기관이 동시에 24시간 아동학대 긴급전화를 운영하고 이를 통해 신고접수를 함께 받고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신고율과 발견율이 높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 역시 아동학대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15일부터 보건복지부 산하에 ‘아동학대 대응과’를 신설하고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에서 파견받은 인력이 동원된다. 매년 아동학대에 대한 사건은 줄지 않는 데에 비해 그에 대한 대응은 비교적 미온적인 편이다.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미국 등과는 달리 가족중심주의가 배태되어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문제는 오직 가족 안에서, 특히 자녀의 훈육과 책임은 부모에게 달려있으며 그에 대한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지속적인 아동학대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는데 기여해왔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공동체를 지향한 대종사의 사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선행돼야하는 것은 내 자녀, 남의 자녀를 구분하지 않는 인도주의정신의 회복일 것이다. 어른섬기는 도가 있듯 아이 사랑하는 도에 따라 중히 알고 위해주는 정신이 더욱 절실해진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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