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무릇 선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원래 마음의 근원에 갖추어진 원만한 지혜를 발현하는 수행(방법)이니 이에 일(是非利害)을 알고 이치(大小有無)를 깨닫는 경계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禪)이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선은 빠알리 자나(jh·na)의 음역어로, 완전한 음사인 선나(禪那 dhy·na)의 준말이다. 싼스끄리뜨의 드야나(dhy·na)는 타연나(馱衍那)로 음역한다. 이에 침사(沈思)·정려(靜慮)·기악(棄惡)·사유수(思惟修)·공덕총림(功德叢林) 등으로 의역을 한다.

무릇 선(禪)의 근본은 공(空)이다. 진리의 궁극처가 공이기 때문에 선도 결국 귀공(歸空)의 방법일 수밖에 무타도리(無他道理)이다. 다시 말하면 진공의 실상에서 만물이 파생되었고 심성(心性)도 근원을 두고 있으며 이기(理氣)도 나온 것임으로 공을 여의고는 어느 것도 원만하거나 구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 자체에 무한한 지혜와 복락이 비장(備藏)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로 귀합(歸合)을 할 때 비로소 깨달음이 생기고 복락을 얻으며 지혜가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니 삼세의 모든 수행인들이 이 공리(空理)를 얻기 위하여 두연(頭燃)의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의 종류를 들어보면 ①자성선(自性禪)이다. 마음의 실상을 보아서 닦을지언정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다(修觀心之實相 不外求) ②일체선(一切禪)이다. 능히 자행과 화타의 모든 공덕을 얻음이다(能得自行化他一切功德) ③난선(難禪)이다. 깊고 오묘하여 닦기 어려운 선이다(爲深妙難修之禪). ④일체문선(一切門禪)이다. 모든 선정이 다 이 문으로 말미암아 나온다 ⑤선인선(善人禪)이다. 대선근의 뭇 생령이 함께 닦는다(大善根之衆生所共修) ⑥일체행선(一切行禪)이다. 대승의 모든 행법을 머금어서 포섭한다

선리란 결국 불학(佛學)의 의리(義理)이다. 그렇다면 그 불학의 선리, 그 기원의 출발점을 어디에서부터 잡을 것인가. 이는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에서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세존께서 처음 나셨을 때, 일곱 걸음을 걷고 눈으로는 사방을 둘러보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나서 이르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니라’”라고 한 말씀에서 선리의 근거를 삼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선리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게송(偈頌)이 되고 시가(詩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송(頌)하기를
부선공리재(夫禪空理在) 무릇 선은 공한 이치에 있고
수법유심공(修法有心功) 닦는 법은 마음 공력에 있다네
각후진지출(覺後眞知出) 깨달은 뒤에야 참 지혜 나오나니
근정진진공(勤精進盡誠) 부지런히 정진하고 정성 다할지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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