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사요의 ‘타자녀 교육’은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에 바탕하고 있다. 자타의 국한을 벗어난 일원상 자리에서 내 자녀도 타자녀도 교육하라는 것이다. 즉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으로 교육할 때 타자녀 교육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정전 ‘타자녀 교육의 강령’에서 “교육의 기관이 편소하거나 그 정신이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지 못하고 보면 세상의 문명이 지체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타의 국한이 트인 교육이어야 내 인연뿐만 아니라 모든 인연이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을 확장하고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모든 후진을 두루 교육함으로써 세상의 문명을 촉진시키고 일체 동포가 다 같이 낙원의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타자녀 교육’ 핵심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야 모든 후진을 두루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산종사법어 ‘세전’에서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케 하는 기초니, 개인 가정 사회 국가의 성쇠와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을 잘하고 잘못함에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두루 교육이 되어야 문명이 촉진되고 다 같이 낙원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태산 대종사는 자타의 국한이 트인 일원상 자리에서 타자녀 교육에 동참하라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인 ‘타자녀 교육의 조목’을 제시한다. 

그 첫째로 “교육의 결함 조목이 없어지는 기회를 만난 우리는, 자녀가 있거나 없거나 타자녀라도 내 자녀와 같이 교육하기 위해, 모든 교육 기관에 힘 미치는 대로 조력도 하며, 또는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몇 사람이든지 자기가 낳은 셈 치고 교육할 것”이라 당부한다.

우리는 교육의 결함 조목이 없어지는 기회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의 결함이 개선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교육의 결함을 개선하는데 참여할 기회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개선해 가라는 당부요 의지이다. 이러한 시대에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 자리에 바탕해 교육기관에 여력 있는 대로 도움도 주고, 힘닿는 대로 기여도 하며,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타자녀의 장학과 교육에 협조하라는 것이다.

둘째로 교육은 국가·사회의 당연한 의무요 책무이므로 교육기관을 공적으로 널리 설치하여 자타의 국한을 벗어난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이며, 셋째로 교단이나 사회·국가·세계에서 타자녀 교육자를 공적에 따라 표창도 하고 대우도 하라는 것이다. 

즉 차별 없이 두루 교육받을 수 있는 제도와 타자녀 교육자를 대우하는 국가·사회를 만들 때 다 같이 낙원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이러한 타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는 개인·가정·사회·국가에 자타의 국한이 트인 일원상의 진리가 적용돼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자타의 국한이 없는 일원상 자리에서 자타가 둘이 아닌 자리이타의 도를 드러내어 타자녀 교육을 시행하라는 것이다.

/나주교당

[2020년 7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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