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보 교무
신은보 교무

[원불교신문=신은보 교무]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메멘토 모리해야하는 요즘, 우리는 메멘토 모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은 웰 다잉(well-dying) 문화를 만들고 있으며, 존엄한 죽음, 준비된 죽음을 안착시켜나가는데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탄생과 죽음은 이제 얼마든지 조작과 선택이 가능하다. 신이 되어버린 인간의 욕망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어 보인다.

자신의 생을 스스로 끊고자하는 의지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종교가 유일해졌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6.6명으로 OECD평균 11.3명보다 월등히 많으며, 하루 평균 37.5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집계된다.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 혹은 존엄사법으로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보였던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요원해보인다. 법안의 제정과는 무관하게 자살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아픈 손가락인 셈이다. 

자살은 스스로를 살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기 때문에 스스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죽이는 살인을 한 살인자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히틀러는 1945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에 독일은 추모나 우상화할 가능성을 근절하기위해 유골을 태워 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 같은 회피적 자살은 현재 국내에서도 사법 조사나 처벌에 직면한 한국 정치인의 주요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2년 전 모 의원 역시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확인되자 극단적 선택을 해 안타까움을 샀다. 시민 운동가며 인권 변호사로서 우리 사회에 공헌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삶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져야할 인과가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한다.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지는 이치는 알지 못하고, 자살을 도모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지는 이치는 알지 못하나니 참으로 농판이다.”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을 안타까워하며 말씀한 대종사의 탄식 섞인 이 한 문장의 말씀이 지금에 급급한 단촉한 우리를 각성케한다. 메멘토 모리,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삶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여 교만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대종사의 말과 같은 뜻이다. 그에 더하여 자살을 도모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지는 이치를 알아 절망한 삶을 살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한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7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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