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보 교무
신은보 교무

[원불교신문=신은보 교무] “삶에 관한 일입니다. 이것은 삶입니다.” 2018년 난민신청을 한 무삽(MUSAB)씨의 마음의 소리이다. 이집트의 인권운동가였던 무삽씨는 한국의 난민으로 인정받기위해서 2년 간 고군분투했지만, 이들은 전 국민 모두에게 지원했던 재난지원금에서 조차 제외됐다. 세금을 내고, 주소를 등록하고, 인간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지탱하고 있음에도 한국 외에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올해로 우리나라는 난민법을 제정한지 일곱 해를 맞이했다. 1992년부터 난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2013년 7월부터 시행되어 약 30여 년 동안 난민정책을 운용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이 무색하게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위해서는 1차 심사까지 최대 46개월, 모든 절차까지 최소 5년에서 최장 20여년의 시간이 걸리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내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쯤에서 한국에서 난민신청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난민(難民)은 말 그대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을 의미한다. 유엔 난민조약(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에 의거해 국제법적으로 설명하면 ‘종교, 인종 또는 정치적 이유 등으로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으로 탈북해온 새터민 역시 난민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매년 수 천명의 탈북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탈북을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1000여명 정도이다. 운이 좋게 탈북을 한 사람들은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에 앞서 두고 온 가족과 살아갈 앞날을 걱정해야하는 난민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한국인이면서 여전히 한국인이 아닌셈이다.

영국의 더럼(Durham)에서 필자가 처음 만난 동양인은 광장에서 ‘아리랑’을 부르던 50대 남성이었다. 그는 국제난민으로 더럼에 정착한 후 한해도 쉼 없이 같은 시간에 나와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고 한다.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던 그에게 우산을 씌워준 것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영국은 오래된 난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북한 난민은 영국에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상징성을 내포한다. 한국을 경유해 영국으로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 한국의 북한이탈주민정책의 실패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의 입국 초기 정책부터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과 인식이다. 

대종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바탕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깨우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로써 결합된 운명공동체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누고 가르며 구분해오던 우리의 지난날이 어떤 결과를 주고 있는지 절실히 느끼는 현재, 우리는 결국 ‘우리’로써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7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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