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등굣길, 주홍빛 능소화가 피었다. 7월 즈음 피는 능소화는 ‘곧 여름방학’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며, ‘한 학기 수고했어’라는 수줍은 응원이다. 임금을 짝사랑한 궁녀 소화의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그리움의 꽃, 장원급제한 선비의 어사화로 쓰이는 콧대 높고 도도한 꽃, 능소화. 우리에겐 담담한 마무리와 담대한 준비를 위해 잠시 쉬어가라는 멈춤의 신호다. 

“오늘날의 세상 형편을 비관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에는 흥망성쇠의 이치가 있어서 몹시 추운 겨울의 고비가 있고 난 뒤에는 반드시 따뜻한 봄의 기운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곤란을 극복하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로서는 실력을 양성하는 것이요, 은혜로서 서로 화하는 기술을 양성하는 것이며, 각자에게 구족(具足)한 본심을 잘 찾아서 잘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정산종사의 말씀.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곤란한 오늘의 형편을 비관하기도, 내일의 준비를 말하기도 하나 보다. 

옛 조상들은 자신의 아이가 병에 걸리면 천지신명에게 빌었고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과 마주했을 때도 신을 찾았다. 그리고 대답을 듣기 위해 기도하며 간청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구글 검색창에 ‘목감기 증상과 치료법’이라고 쓰고 엔터키를 누른다. 종교 속 신과 다른 게 있다면 구글은 반드시 대답을 준다는 거다. 구글은 성가시게 하거나 괴롭게 만드는 온갖 물음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그래서인가. 뉴욕대 경영대학원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구글을 ‘현대판 신’이라고 한다. 기도가 신을 향한 물음이라면 구글은 신이고 검색은 기도와 같으며 검색 결과는 은총과 같다 한다. ‘물음’에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정확하게 답해주는, 그래서 친구든 가족이든 성직자든 구글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 제자, 대종사에게 묻는다. “누가 대종사의 신통(神通) 유무를 묻는데, 어떻게 답할까요?” 모른다고 하라는 대종사. 그는 거듭 묻는다. “굳이 물으면 어쩌죠?” “그럼 큰 신통이 있다고 하라”는 대종사. 어떤 신통이냐는 물음에 대종사는 “우리는 각기 제 마음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우리 스승은 우리들의 마음 쓰는 것까지 살펴보시며, 우리는 제 마음도 제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데 우리 스승은 우리들의 마음에 부처님 마음을 접붙이는 재주까지 있으시니. 그것이 어찌 큰 신통이 아니냐 하라”라고 한다. 

신통,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영묘하고 불가사의한 힘이나 능력. 스승은 불치병을 낫게 하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말하지 않았구나. 높은 담 타고 오르는 능소화 필 무렵, 개인의 실력과 함께 우리라는 이름으로 은혜의 연대를 탄탄히 하고 본래 마음 찾아 사용하자고 곤란한 시기 극복하고, 준비하자 한 스승의 가르침에 마음을 접붙인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7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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