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설원이 펼쳐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이슬란드의 한 시골 마을. 이 마을에는 특별한 양치기 형제가 있다. 형 키디와 동생 구미는 40년 동안 반려견의 입에 편지를 물려 전달하는 등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지낸 남다른 사연을 가진 사이이다. 

이 마을의 가장 큰 행사인 우수 양 선발대회, 형 키디가 1등을 한다. 2등을 한 동생 구미는 어떤 점에서 자신이 진 것인지 비교하는 도중, 키디의 양이 양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 스크래피를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후 평화롭던 마을은 참담한 상태가 된다. 애지중지 키워오며 의존해왔던 양들에게 전염병이 퍼짐에 따라 마을의 모든 양을 도살하라는 지시를 받았기에. 모두가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중, 동생 구미는 농장 혈통을 보존하고픈 욕심에 몰래 집 지하실에서 양 몇 마리를 숨기고. 양을 지키기 위해 두 형제는 40년 만의 침묵을 깨고 비밀리에 의기투합하게 된다.

2015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램스(Rams)’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이 ‘Lambs(어린 양)’가 아닌 ‘Rams(숫양)’인 건 제법 의미심장하다. 영화 내내 형제는 양을 지키려 동분서주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양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 드러난다. 키디와 구미, 세상에 오직 둘 뿐인 그들 형제 말이다. 이 영화, 양을 지키고 싶었던 양치기 형제의 소소한 소동을 그린 것 같지만 결국에 사람을 향하는 이야기다. 가족 간 온기를 말한다. 

사실, 가족은 언제나 직설법으로 말하는 사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 상사에게 절대로 하지 않는 날것의 말을 내뱉고, 돌려받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후련하고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또 그렇기에 가족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도 드물다. 

가족과 함께하는 물리적 시간이 늘어난 요즘, 감사하고 즐거운 것도 잠시. 가장 편안해야 할 가족마저 긴장해야 하는 관계가 된다며 불평들이 많다. 상담실마다 부모, 자녀, 가족 상담 의뢰가 증가하고. 청소년의 정신건강도 전보다 취약성을 띈다는 연구도 보인다. 엄마는 종일 스마트폰만 하는 자녀가 불안하고, 자녀는 엄마의 불신 가득한 시선과 가시 돋친 말이 불만이다. 어쩌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야말로 제2의 언어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심스러운 짐작과 성숙한 간격이 필요하다. 어떤 말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철 심장을 가진 가족은, 아니 인간은 없으니 말이다. 

대종사는 가까운 사이에 그 가까움으로써 혹 예(禮)를 차리지 않고 조심하는 생각을 두지 않아, 서로 생각해 준다는 것이 서로 원망을 주게 되고, 서로 가르쳐 준다는 것이 오해를 가지게 되며, 결국 관계없는 외부 사람만도 못하게 되는 수가 허다하다 했다. 때론 인정이 지나쳐 착심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이, 무겁지 않게. 가볍지 않게.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8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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