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일상수행의 요법’은 일상에서 수행하는 요긴한 방법이다. 즉 요란해질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어리석어질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글러질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불신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탐욕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게으른 나태가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자기 맘대로 행하는 어리석을 우(愚)가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원망생활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타력생활이 있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배울 줄 모를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가르칠 줄 모를 때가 일상수행 할 때요, 공익심이 없을 때가 일상수행 할 때인 것이다. 동정(動靜)간 대하는 모든 경계가 일상수행 할 때로, 일상은 동정 간 모든 상황이다.

요란할 때 요란한 줄 아는 텅 비어 고요한 자리에 그쳐 있는 것이 일상수행이요, 어리석어질 때 어리석은 줄 아는 신령한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일상수행이요, 글러질 때 그른 줄 아는 두렷한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일상수행이다. 이처럼 텅 비어 고요한 자리요, 신령하게 알아차리는 자리요, 애초에 사사가 붙을 수 없는 두렷한 일원상 이 자리에 들어, 이 자리로 경계를 운영하는 것이 곧 일상수행인 것이다.

또한 마음이 정(定)해 있는 신(信)이 분명한 자리가 일원상이요, 용장한 분심(忿心)이 온통인 자리가 일원상이며,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오롯한 자리가 일원상이며, 간단없이 정성한 자리가 일원상이며, 또한 불신인 줄 알아차리고, 탐욕인 줄 알아차리고, 게으른 나(懶)인 줄 알아차리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우(愚)인 줄 알아차리는 자리가 일원상인 것이다. 이처럼 일원상의 드러남인 신분의성으로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는 것이 곧 일상수행인 것이다.

또한 원망심이 일어나면 원망하는 줄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당체인 텅 비어 고요한 자리에서 원망생활에 빠지지 말며, 설사 덕을 베풀지라도 상에 집착하고 자만에 흘러가지 않는 감사생활하자는 것이며, 또한 의뢰생활에 빠지면 본래 온전한 자력을 회복하여 의뢰하는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자는 것이며, 배울 줄 모를 경우에 배울 줄 모르는 마음당체인 신령한 자리를 돌이켜보아 일체의 차별에 걸림 없이 잘 배우자는 것이며, 가르칠 줄 모를 때에 가르칠 줄 모르는 마음의 본래처인 국한 없는 자리를 비춰보아 계한 없이 잘 가르치자는 것이며, 또한 사심이 일 때 사심의 소종래 처인 지공무사한 마음당체를 직시하여 공익심 있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 마음으로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전회(轉回)하자는 것이며, 온전한 일원상 마음으로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전환하자는 것이며, 국한이 툭 트인 일원상 마음으로 잘 배우고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는 것이며, 공변된 일원상 마음으로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는 것이 곧 일상수행이다. 

결국 일상수행은 일원상을 체받는 일상의 마음공부로, 삼학팔조 사은사요의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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