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보 교무
신은보 교무

[원불교신문=신은보 교무] 벤자민 플랜클린은 1776년 독립선언문에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후 국내에서는 이승만에 의해 국민단결을 촉구하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정치구호가 퍼지게 됐다. 벤자민의 연설은 꽤 오랜 시간 세계를 주도하는 핵심사상으로 기능하게된다. 새마을 운동부터 짧은 시간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나라 역시 그 여느 국가들보다 ‘Join, or Die’의 최대 수혜국으로 성장하게 됐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8월 31일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선언이 곧 최고의 백신임을 주장했다.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 곧 연대하는 것임을 그로인해 재확산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음을 간곡히 호소했다. 그라노베터의 논문 <약한 연결의 힘(Strength of Weak Ties)>에서는 보스턴 근교의 노동자들이 직업을 구하는 과정에서 가까운 지인보다는 적당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강한 연대보다 약한 연대가 더 효과적임을 확인하게 된다. 강한 연대에 해당하는 가족이나 친지의 경우 자신의 사회적 영역에서 유사한 정보를 얻고 비슷한 판단을 하지만, 이에 반해 약한 연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정보와 참신한 의견으로 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연고주의(緣故主義)’ 사회관계를 우선시하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을 가르키는 사회현상. 연고주의가 사회문제로 다뤄지는 경우는 개인의 이득을 얻기 위해 특정 대상을 선호하거나 혜택을 주는 ‘연줄주의’로 악용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회자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거래비용을 줄이거나 사회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으로 다시 주목받기는 하나 여전히 지역갈등, 엘리트주의, 패거리정치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약한 연대는 연고주의의 부정적 기능을 상쇄시키고 다원성과 보편적 연결망을 가능케 할 것이라 기대했고, 이러한 기대는 코로나 시대라는 급물살을 타고 확대되고 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살 수 있는 현재, 뭉치면 죽는 곳이 과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뿐일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의와 부패를 양산했던 뭉쳐진 구습들, 개인주의를 위장한 이익추구에 집중된 뭉쳐진 이기주의, 자신들의 신념만이 구원이며, 해답이라 주장하는 뭉쳐진 독선이 있는 곳은 어디든 살기 힘들게 될 것이다.  

“널리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저의 하는 일에만 고집하며 저의 집 풍속에만 성습되어 다른 일은 비방하고 다른 집 풍속은 배척하므로 각각 그 규모와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드디어 한 편에 떨어져서 그 간격이 은산 철벽(銀山鐵壁)같이 되나니, 우리는 하루 속히 이 간격을 타파하고 모든 살림을 융통하여 원만하고 활발한 새 생활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니 그러한다면 이 세상에는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나니라.” (대종경 제8불지품 21장)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9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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