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우리들이 이 교리도의 항목들을 해설하는 것은 오래도록 이어온 전통이 있고 선진들의 법문이 있기 때문에 현재 가르치고 배우며 알고 깨닫는데 보편적인 해석을 넘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즉 교리도란 그 자체가 독로(獨露)나 독현(獨顯)이 아닌 총체적이요 융통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하나를 들면 전체가 연결의 고리로 엮어져서 끊어질 수가 없고 떨어질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우리가 경전해석에 자칫 잘못 독자적인 해석을 해본다고해서 전통적인 흐름이나 월역(越域)으로 엉뚱한 해석이나 의미를 부설한다면 자칫 원의(原意)에 이반이 되고 위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니 어떻게 면치(免恥)를 할 수가 있으리요.  

그러한 의미에서 ‘일판삼반(一判三返)’과 ‘삼합일반(三合一返)’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일판삼반’이란 ‘하나가 짜개져서 셋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고, 또한 ‘삼합일반’은 ‘셋이 합해져서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하나’라는 것은 곧 ‘일원진리’를 말하고 ‘셋’이라는 것은 ‘교리도’와 정전과 대종경을 말한다고 할수 있다. 그리하여 ‘도·전·경(圖·典·經)’이 낱낱이 분리된 것이 아닌 회융(會融)된 것이요, 따라서 이 회융은 회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셋으로 반문(頒分)되어 있는 것임으로 각기 떨어진다거나 낱개의 독단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법화경 28품 가운데 앞 14품의 요지를 드러낸 말이다. 세존이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연각·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했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설파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학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도·전·경(圖·典·經)’은 셋이 아닌 하나이다. 그러니 ‘도(圖) 가운데 전(典)과 경(經)이 들었고, 전 가운데 도와 경이 들었으며, 경 가운데 도와 전이 들어있다’는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도를 들면 정과 경이 따르고, 전을 들면 도와 경이 따르며, 경을 들면 도와 전이 따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어느 것을 붙잡고 공부를 하여도 구경에는 하나일 수밖에 없고 나중에는 그 하나마저도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송(頌)하기를
미옥인승결(美玉因繩結) 미옥은 끈으로 인해 맺어지고 
상생인력연(相生引力連) 서로의 생은 인력으로 이어지네  
도중경전입(圖中經典入) 교리도에 대종경·정전 들었으니
일판반삼전(一判返三全) 하나 짜개져 완전한 셋이 된다.


▶바로잡습니다. 본지1997호 교리도산책 일판삼반의 본문 내용이 다른 내용으로 게재돼 다시 기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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