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입학식도 없이 교복도 몇 번 못 입은 휘경여중 신입생 167명을 위한 2주간의 교과 융합 수업 ‘동그라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코로나19로 학교 수업의 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져 일상의 학교생활이 어려웠기에 지혜를 모은다. 국어, 영어, 수학 등 5개 교과 수업의 공통주제는 공존(共存). 우리 삶을 동그라미와 연관 지어 생각하며, 나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연계됨을 여러 교과 학습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계열이 사라지고 통합이 강조되는 시대, 이러한 프로젝트는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학교 교육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거라 기대했고, 교사와 학생 모두 몸소 인성교육을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수학은 공존을 어떻게?

수학 시간 자주 보던 동그라미 그림, 벤다이어그램. 세 사람이 각각 지름 1미터짜리 훌라후프를 하나씩 허리에 차고 있다. 이들은 그 상태로 한 변이 1.5 미터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림을 그려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각자가 공간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세 원의 일부분을 겹치게 서면 된다. 

1880년 영국의 논리학자인 존 벤이 만들어낸 벤다이어그램. 그는 원은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다고 했다. 물에 사는 동물의 원과 육지에 사는 동물의 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두 원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물과 육지를 오가는 동물인 개구리나 거북이가 이 부분에 들어간다. 벤다이어그램은 두 원을 겹쳐 그려 교집합이나 부분집합, 합집합 같은 추상적인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대가 함께 살았던, 큰 원이 있다. 대가족의 구성원들이 분리되어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원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급기야 이제 1인 가족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왔다. 큰 원에서 분리된 수많은 작은 원, 문제는 원이 작아졌다고 해서 그 안에 들어가야 할 것들이 일률적으로 적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1.5평 남짓 원룸에도 주방, 화장실, 세탁기까지 채워야 한다. 벤다이어그램은 힌트를 준다. 훌라후프를 겹치면 된다. 개인 공간은 따로 쓰되 주방이나 세탁실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나 최소한의 사무실 외에 공간과 설비를 같이 쓰는 공유 오피스는 소유(所有)보다 공유(共有)에 더 가치를 두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몇 개의 동그라미로 만들어내는 교집합, 합집합은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소유와 공유의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 사회가, 동그라미 하나가 다른 한쪽을 전부 흡수해 비로소 하나가 되는 합집합이 아닌, 차이는 인정하되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하나가 되는 교집합. 공정한 나눔이 있는 동그라미면 좋겠다. 누군가 그러더라. 다시 군대 가는 꿈, 최고의 악몽이라고. 수학 시험 보는 꿈이, 내겐 그렇다. 벤다이어그램도 고등학교 졸업후 처음이다. 수줍게 고백한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9월 25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