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교무
이응준 교무

[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원불교 선수행법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무시선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시선무처선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 속에서 항상 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성가』 2장 교가 2절에서도 ‘무시선과 무처선의 공부로 한량없는 삼대력’을 갖추기를 노래했다. 성가를 통해서 원불교 수행을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무시선과 무처선의 수행이 살아날 수 있도록 의미를 새겨보면 좋겠다. 

과거, 선 수행이라고 하면 철저한 고독과 투쟁의 세계로, 설산고행과 면벽참선 등이 선을 떠올릴 때 따라오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런 관점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무시선은 선수행의 혁신이 아닐 수 없다. 또 선수행을 노래를 통해 배우고 선수행을 권고, 찬미하는 부분은 원불교의 선수행이 얼마나 획기적인가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이 선수행이 되고 보살되고 부처되는 수행을 노래할 수 있다면 이보다 쉽고 즐거운 수행이 또 있을까. 원불교의 마음공부가 무시선무처선을 통해 쉬지 아니하고 사대강령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일상수행의 요법으로 이어지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무시선가는 깨달음으로 가는 힘든 고행이 아니라 알아지고 깨달아질 기대감과 희망에 찬 즐거운 수행의 노래가 될 것 같다.

무시선가에는 무시선법의 대의와 요지가 들어 있다. 온 천지 그대로가 우리 선도량이고,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매 순간을 마음공부의 길로 잡아야 제대로 된 원불교의 수행이요, 부처되는 빠른 길임을 확신에 차면서도 차분히 노래 해보자. 성가를 노래하다보면 다소 느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종교적인 거룩함을 많이 표현하다 보면 주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깨달음이라는 거룩한 결과를 향해 수행하지만, 이러한 수행도 일상을 떠나지 않는 점을 생각해보면 긴장은 놓지 않으면서 신앙과 수행의 장엄도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불교의 무시선 수행이 너무 생활과 멀어진 느낌이 들지 않도록, 대종사가 말한 일상 속 누구나의 수행이 될 수 있도록 조금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시선가를 불러보자.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0월 0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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