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덕 교무
이윤덕 교무

[원불교신문=이윤덕 교무] 세상에 영원한 내 것은 없다는 가르침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같은 말 다른 표현 같기도 하다. 변하니 내 것이 없고 내 것이란 것도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라는 말로 존재의 실상과 나와의 관계를 그대로 표현한 가르침이다. 

일체 존재가 사는 세상은 나와 가족 그리고 사회국가 세계 더 나아가 자연환경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서로에게 시비이해를 만들며 굴러간다. 영원한 내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없이 그래서 세상이 이토록 견고하게 돌아가고 있다. 불교의 인드라망의 원리요 진공묘유의 사실이며 인과보응의 현현이다.

그래서 힘이 큰 쪽에서 탈이 나면 나머지는 크게 고생을 하는 인과의 위력이 세계가 하나의 국가처럼 돌아가고 사람의 일들이 더 많이 공개되는 현실에서 더 빠르게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가 덜되고 세계화가 더뎠던 시절엔 미리미리 예방하고 준비하지 못한 탓에 개인에게 가난이 오고 병고가 왔다지만 요즘은 자국의 정책이 또는 외국의 정책에 의해서도 나의 운명이 바뀌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세계질서라는 이름으로 정치경제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지닌 나라들이 자리이타 정신이 상실된 까닭에 국민복지로 가야 할 국가정책이 엉뚱하게 지출되며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고 다수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세상이 고착되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가 유럽에 재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의 정책과 국민성 그리고 국격이 몰라보게 상승됐음을 독일 언론을 통해서, 또는 한국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반겨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황대처를 잘하며 다른 나라들과 실질적인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정책이라 여겨진다. 개인이나 국가나 자기 혼자 잘 살려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이익은 나만의 노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므로 부(富)라는 것은 더불어 행복해지는 데 사용할수록 천당과 극락 광대무량한 낙원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빈부의 양극화로 지옥이 될 수도 있는 도구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공부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각자의 처지와 실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먼저 머리 아프게 하는 고민부터 찬찬히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 

그 다음은 내 삶은 나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가족과 사회구성원, 꼴 보기 싫은 정치 등 그것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기에 함께 사는 법에 대한 나의 관대함을 키우는 것이 스트레스를 낮추는 요긴한 법이다. 그러면 내 삶의 처지와 실정이 더 정확하게 보이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힘과 할 수 없는 힘도 알게 된다.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만 하면 삶은 조금 덜 팍팍 하게 될 것이다. 살면서 내가 소유한 것은 사실 하나도 없다는 가르침의 말씀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못한 것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거나, 부지런히 벌기만 했지 실은 내가 써보지 못한 것들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공부인이 살아서 자기 천도를 다하라는 가르침도 소유한 것들을 잘 정리해 물려줄 것들로 사후 분란이란 업을 막는 일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살아서 소유한 내 것이 있다면 공부인들은 살아 있을 때 사용하길 권한다.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놓고 가야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 놓아야 자유로운 것들을 놓는 힘, 먹고 살기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의 행복이 있다면 잘 산 것이다. 

[2020년 10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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