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서서히 발병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진행하면서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을 동반한다. 느릿한 일상 치매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조금씩 기억을 잃고 천천히 멀어진다는 데서 유래해 롱 굿바이(Long goodbye)라 부른다. 

치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치매를 겪는 아버지와 이를 돌보는 가족들 이야기다. 가족들이 아버지의 상태를 처음 알게 된 후, 7년 간 천천히 진행되는 증상과 일상의 에피소드로 가족 사이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자꾸만 어딘가를 향해 돌아가야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버지. 자신만의 시간에 갇힌 아버지는 과연 어디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6.3% 증가하며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었다. 노령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 1위도 치매다. 

하지만 영화는 치매라는 소재를 전혀 무겁게 다루고 있지 않다. 치매를 다룬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힘든 순간이 많지만 오히려 웃을 수 있던 시간이 많았던 아이러니를 다뤘다. 기억은 천천히 멀어져 갔지만 가족은 그 순간 더욱 가까워졌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소소한 일상은 오래도록 가족의 추억이 되어준다. 힘든 시기에 더욱 돈독해지는 연결과 유대의 힘은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한다.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건축가 정기용의 일생을 담았는데 그는 아름답고 찬란한 마지막 여정을 위한 준비를 말한다.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세상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다시 곱씹어보고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하겠다.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이 말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정기용 건축가의 위엄이 느껴진다. 나도 그렇게 죽음 앞에 위엄 있는 자세를 갖고 싶다.

대종사, 살 때 생(生)의 도를 알지 못하면 생의 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죽을 때에 사(死)의 도를 알지 못하면 악도를 면하기 어렵다 했지. 또, 생전에 자기 천도를 마치려면 마음을 밝고 조촐하고 바르게 길들여 물들고 섞이지 않도록 바쁘게 수도하라 했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상기하며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을 실천하고 싶다. 

[2020년 10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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