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흔히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봐야 철이 든다고 하는데, 요즘 살짝 다른 생각이 든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인내심이 길러지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며 분명 철이 든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부모의 ‘로병사(老病死)’를 겪으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리라 생각했던 내 존재의 출발, 원형이 소멸을 향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일 말이다.

품격(品格)이란, 본디 타고난 바탕과 성품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말한다. 그중에도 ‘격(格)’이란 글자는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나무에 버팀대를 세워주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품격이란 것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라는 나무가 올곧게 자라 거목이 되기도 하고 기울어 쓰러지기도 한다.

소년기의 정산종사는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원만한 큰 스승의 모습, 그리고 고요한 해변의 풍경이다. 뒷날 청년이 되어 대종사를 만나 알았다. 그 때 그 어른이 대종사요, 그때 그 강산이 영산이었음을. 눈을 감아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정산종사를 변산 월명암에 보내며 불경은 보지 말라 했던 대종사. 스승의 당부에 경상(經床)도 외면했고. 전주는 들르지 말고 만덕산을 가라 하니 전주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그것이 무엇이든 눈길도 주지 않고 외면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정산종사는 유년기에 마음 고통이 심해 몹시 방황했다. 집을 뛰쳐나가 보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간절한 축원 기도도 했다. 그러다 대종사를 만난다. 그날부터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마음으로 대종사를 떠나본 일 없고 대종사 뜻을 거역해 본 일 없지만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마음이 사(私)에 흘러서 허공같이 되지 못할까 하는 걱정, 공심이 널리 미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다. 행여 지금 마음의 걱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대종사는 “부처님의 지행을 얻어 부처님의 사업을 이룬다면 꽃다운 이름이 너른 세상에 드러나서 자연 부모의 은혜까지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자녀로 인해 부모의 영명(令名)이 천추에 길이 전하여 만인의 존경과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면, 일생을 모시는 것에 비할 수 없는 보은이 된다 했다. 더불어 다생(多生)의 이치로 보면 과거 미래 수천만 겁을 통해 정하였던 부모와 정할 부모가 수없이 많을 것이니, 힘이 미치는 대로 자력 없는 타인 부모도 보호하라고. 그러면 삼세 일체 부모의 큰 보은이 된다 했다.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빠짐없이 밟아나가자. 큰 원을 세우고, 꾸준히 해 나가리라. 다 품에 안고 내 주견, 내 생각에 얽매여 작아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진리의 뜻에 따라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큰 대인의 마음이 있어야지 우리가 생각하는 보은의 품격이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1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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