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42장에서는 “수도인이 혜수만 좋아하고 공부를 잘못하면 악도에 떨어지나니,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덕을 적게 입고 공부하여야 빚이 적나니라”라고 했다.

지난해 패션계의 전설로 불리던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커펠트가 사망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유일한 가족인 반려묘 ‘슈페트’에게 2000억 원대의 유산이 어떻게 상속될 것인지에 쏠렸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신탁의 형태로 반려묘에게 유산을 상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교화훈련부에서 근무할 때 어떤 교도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교도로 등록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새 정법회상에 인연을 걸어두면 다음 생에는 더 진급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행 교도 등록 기준은 오직 사람만 가능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분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향후 교단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세상에는 가난하거나 못나거나 병들고 사람들의 천대를 받는 ‘사람’도 있고, 예쁘거나 부유하거나 건강하게 태어나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동물’도 있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나느냐 또는 동물로 태어나느냐는 전생에 닦은 수도(공부)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대해 예쁘고 부유하거나 가난하고 추한 것들은 전생에 지은 바 죄복의 결과다. 곧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가난하거나 추한 사람은 전생에 공부는 많이 했으되 복 짓기를 게을리 한 사람의 인과며, 예쁘고 좋은 몸으로 태어나되 사람 몸을 받지 못하는 동물은 전생에 복은 많이 짓되 공부하기를 게을리 한 사람의 인과다. 

대종사는 “전생 일을 알고자 할진대 금생에 받은 바가 그것이요, 내생 일을 알고자 할진대 금생에 지은 바가 그것이라”고 하셨다. 건강하고 예쁜 사람 몸을 받아 부유한 집에서 사랑받으며 산다면 그 사람은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생에 더 큰 복덕 짓기를 쉬지 않고, 정법의 바른길을 만나서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 사람은 내생을 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천억의 유산을 물려받은 반려묘는 전생에 많은 복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려묘는 언제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수도를 하고 복덕을 쌓을까? 알기 어렵다. 오히려 자신의 반려동물을 입교시켜 정법의 인연을 맺어주겠다는 분의 뜻이 더 크지 않을까? 사람 몸을 받아야 부처님의 회상을 만나 보리심을 발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만 육도의 윤회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수도인이 받기만 좋아하고 공부를 게을리한다면 어찌될까? 정산종사의 말씀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가까운 내생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2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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