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는 다도(茶道)를 비롯한 기본예절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뚜렷이 기억나는 그날은, 부모님을 초대해 그간 배운 것을 실습하는 예절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워킹맘인 엄마는 평소 학교 행사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참석하더라도 늘 제시간보다 늦었다. 그날도 친구들의 엄마는 대부분 자리했는데, 내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 또 못 오는 건 아닐까 걱정할 때, 선생님이 “너희 엄마 오셨다”라고 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 우리 엄마다. 선생님과 엄마는 첫 만남인데. 친구의 속삭임에 의문이 풀린다. “야, 너랑 엄마랑 똑같다!” 그렇다. 나는 엄마를 쏙 닮았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엄마는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기도 가는 길, 새벽 시장에 들러 장을 본다. 교당 것 하나, 우리 집 것 하나. 자전거에 실린 장바구니는 늘 두 개다. 4남매의 도시락과 남편의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이지만 기도에 쉼은 없다. 엄마의 새벽 외출이 불만이던 어린 시절, 간절한 그 기도의 의미를 미처 몰랐다.

교무님이라고 했다. 낯선 복장과 머리. 그리고 황금색 동그라미. 엄마 손을 잡고 교당에 갔던 첫날. 그날부터 일요일은 교당 가는 날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당은 꼭 가야 한다는 엄마가 야속했다. 여름 휴가는 의례 어린이 훈련이다. 훈련 가기 싫어 아픈 척도 했다. 꾀병으로 연기력 늘어가던 시절. 그 시절이 오늘의 나임을 미처 몰랐다.

어느 겨울, 수능시험 후 대학원서를 쓰던 남동생은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가족을 소집했다. 원불교학과를 가겠단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선언은 쓰나미다. 가장 심한 충격을 받은 건 아버지. 기대에 비례한 실망의 크기는 아버지를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동생의 출가는 순전히 본인의 결정이었지만, 원망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 원망을 묵묵히 받아내던 엄마의 굽은 등은, 그녀가 느낀 기도의 위력과 사랑이었음을 미처 몰랐다. 

동생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겐 웃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교전을 읽었다. 아들의 선택이 몹시도 궁금했고, 무너진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곧 돌아오리란 기대와 기다림을 견디려는 몸짓이라 생각했다.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내려가던 그 사랑을 미처 몰랐다.

시간이 흘러 동생이 선택한 그 길을 함께 가겠다 했을 때 아버지의 한마디는 “왜?”였다. 탄식 섞인 그 물음에 담긴 깊은 의미를 미처 몰랐다. “왜냐면”이라고 대답하면 안 되는 거였다. 아무 말 안 해도 그 눈빛과 공기면 충분했는데. 

긴 시간, 간절한 염원과 인연이 만나 오늘이 있음을. 여기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곳임을. 미처 몰랐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1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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