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45장에서는 “불보살 성현들은 운명을 초월하여 화복을 자유로이 수용하시나, 범부와 중생들은 운명에 끌리어 화복의 지배를 받나니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운명이란, 사람이나 사물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가지는 것으로 절대 거스르거나 예측할 수 없으나 이미 정해진 절대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일어난 후에 사람들은 그것이 운명이었음을 짐작하곤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의 다가올 운명을 미리 알고 싶어서 사주를 보거나 점을 쳤다. 비록 그 결과가 실제로는 다르게 나타날지라도 사람들은 점을 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충격을 완화하고 위안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운명이 초월적이고 절대적 힘을 가진 ‘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고,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그 신을 향한 간절한 신앙을 통해 운명을 수용하도록 가르쳐 왔다.

그런데 정산종사는 불보살이나 성현들은 스스로 운명을 ‘초월’해서 화복을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곧 부처님이나 보살들은 자신의 운명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자유롭게 바꿀 수도 있으며, 필요에 따라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거나 복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도 아닌 인간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불교에서는 아라한의 불과를 성취한 성자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의 불가사의한 능력이 생기는데, 그 가운데 지나간 세상의 생사를 자재하게 아는 능력을 숙명통(宿命通)이라고 부른다.

사문과경(沙門果經)에서는 마음이 깊은 선정에 들어 고요하고 청정하여 확고부동하면 전생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숙명통은 그 사람이 지은 바 전생의 모든 업과 인과를 바르게 알아서 금생의 자비희사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이다. 이처럼 불보살에게는 사실 미래를 보는 능력이 없다. 오직 과거에 지은 바 업을 잘 돌아보고 인과의 이치를 믿는 것으로써 다가올 미래의 운명을 알 뿐이다. 따라서 사람이 평소 지난 일들을 잘 돌아보며 그 속에서 복의 근원을 찾고, 또 죄업을 알아서 뉘우칠 줄 안다면 그것이 바로 불보살의 삶이다. 반대로 평소 선악 간 지은 바 죄복을 돌아보지 않고 알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항상 운명에 얽매이고 끌려 사는 중생이 될 것이다.

어느덧 다사다난했던 경자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밝은 숙명통으로 한 해 동안 지은 선업과 악업을 돌이켜본 후, 죄업은 반성하고 새로운 선업의 실행을 다짐하는 것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며, 운명을 초월하여 죄복을 자유로 하는 불보살의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를 염원해 본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2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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