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교무
김경일 교무

[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일원상 수행을 대표하는 특징을 꼽으라면 삼학병진 수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삼학병진이 그처럼 중요할까?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삼학병진이 아니면 일원상 진리를 온전하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통 불교에서는 삼학병진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서가모니부처의 팔정도(八正道)수행은 본질적으로 삼학병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승불교에서도 계정혜(戒定慧) 삼학은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그러나 교리가 아니라 삼학 수행의 실제가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대종사가 살펴본 당시의 불교 수행은 서가모니불의 가르침이나 대승불교의 삼학병진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 듯하다. 봉래산에서 은거하면서 지으신 ‘조선불교혁신론’에 보면 부처님에 대한 극진한 찬양과 함께 당시 불교의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혁신할 것을 주창했다. 불교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법이 오랜 세월 전해 오면서 수행자들의 근기가 다르고 습이 다른 가운데 선호함을 따라 각종 각파가 나뉘게 되고 그에 따라 수행의 전통과 관습도 나뉘어 전해지게 된 까닭일 것이다. 

예를 들면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의 분파가 대표적이다. 교종은 부처님 말씀을 주로 강조하고 선종은 말씀을 넘어서서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궁극의 실천 수행을 강조하다 보니 세월의 흐름을 따라 수행의 전통도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교종 가운데도 소의(所依) 경전을 따라 화엄종, 천태종, 법화종 등으로 나뉘게 되었고 실천 수행을 강조하는 종파 가운데도 염불종, 선종, 율종 등이 생기게 되었으며 선종 가운데에도 그 수행 방편을 따라 묵조선( 黙照禪) 간화선(看話禪)등의 분파가 나뉘게 되었을 것이다. 

설사 분파가 나뉘었다 하더라도 상근(上根)의 법기(法器)들은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나 중하근기의 수행자들은 자연스레 분파간 상호 비난과 배척이 불가피했을 것이며 견고하게 굳어진 측면들이 있었을 것이다. 

대종사는 이와 같은 분파적이고 편협한 수행으로는 원융한 부처의 참 가르침을 회복하기 어렵다고보았다. 이에 등상불 대신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준으로 표방하고 일원상 진리에 근거한 통합수행의 결론을 삼학병진 수행으로 귀결했다. 

앞에서 이미 공부한 일원상 진리의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와 조화(造化)의 진리를 그대로 체 받게 하신 것이다. 일원상 진리의 공(空) 원(圓) 정(正)의 진리를 여실하게 본받도록 하고 이를 위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수행법을 제정한 것이다. 

대종사는 삼학을 편수하는 제자들을 보면 크게 나무랐다고 전해진다. 가령  경전이나 계율은 소홀이 하면서 좌선이나 염불에만 치중을 한다든지, 또는 계율이나 좌선은 하지 않으면서 경전만 탐독한다든지, 또는 계율이나 인과를 중히 알지 않으면서 무애행(無碍行)을 하는 제자들을 보면 엄하게 꾸짖는 대목들이 『대종경』 곳곳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일부의 사람들은 ‘지금은 스타가 필요한 시대이니 우리도 염불이나 좌선, 또는 특정한 경전을 전공해서 그 분야에 능통한 전문수행자를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관점은 수행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021년 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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