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정인아_미안해

기사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환하게 웃던 아이는 표정을 잃었고, 하얗고 통통하던 피부는 온몸이 멍이 들어 시커멓게 변해 말라있었다. 지구별에 온 생명은 16개월 만에 온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나서야 마침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모두가 은혜라고 했다. 분명 모두가 은혜라고 했다. 그런데 은혜가 아니었다. 기사를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고,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분노로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저 이를 어떻게 은혜로 볼 것인가. 화두가 됐다. 저 사람들이 은혜가 되기 전까지 나는 모두가 은혜라고, 처처가 불상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저 사람들을 부처로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원불교 신앙을 하자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올린 정인이 양부모의 사진을 보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자식이구나를 애써서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그도 잠시, 다시 심장이 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 어린 생명을 그렇게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아침 좌선을 위해 일원상 앞에 단정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한 소리가 가슴에 울린다.

“신오야, 막작시념(莫作是念)하라!” 『금강경』에서 수보리는 끝없는 번뇌로 괴로워 하는 대중을 대신해 석가세존에게 많은 질문과 걱정되는 바를 올린다. 석가세존은 답을 하기 전에 그 모든 분별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수보리야, 막작시념하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작시념 하라는 말은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울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한 생각이 쉬어졌을 때, 정인이도, 저 이들도, 나도, 내 앞의 향로와 촛대도, 전부 저 일원상과 다르지 않음이 드러났다. 내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늘 스스로 그러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의 진리’에서 일원상의 진리는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했고, ‘일원상 서원문’에서는 모든 부처와 성인과 나를 포함한 일체 중생의 성품이라고 했다. 이 자리를 신앙하지 않으면 처처불상을 할 수 없고, 나의 육근을 통해 수행하여 드러내지 않으면 사사불공 할 수 없다. 마음 깊이 참회가 올라왔다. 내 마음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은을 통해 세상에 환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다 내가 지은 바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인이 뿐이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 가득한 슬픔과 비통과 한스러움은, 분별을 멈추고 일원상과 하나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은혜로 드러나고 상생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드러낸다.

일원상의 불생불멸은 공적의 자리이나, 인과보응은 묘유라 호리도 틀림없이 소소영령하다. 주는 사람이 받은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은 반드시 주게 되어있다. 본인들의 무서운 업을 짓는 희생으로 아동학대의 경각심을 깨워준 저 화신불들에 감사하며, 함께 성불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2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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