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학교근무를 마치고 기숙사에 일이 있어 가려는데, 한 학생이 미안하다며 어린아이를 몇 시간만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늦으면 안 되는 일이라 아이를 데리고 다녀오자 싶어 나왔는데, 차가 이상하다. 여기저기 쇠 파이프 같은 것으로 찍힌 자국들이 깊게 파여 있고, 보조석 말고는 문이 모두 망가져 열리지 않았다. 아이를 잠깐 보조석에 앉히고 차를 살폈다. 이런! 타이어도 세 개나 터져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아이를 운전석으로 옮기고 보조석에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문득 시동은 걸리나 싶어 키를 넣고 돌렸다.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엔진은 괜찮은가 보다 싶었는데, 차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서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 얼른 핸들을 잡았다. 어떻게든 안전한 곳을 찾아 세워보려고 좌우를 살폈다. 

코너 쪽에서 유모차를 밀며 두 사람이 불쑥 튀어 나왔다. 두 사람이 차를 보고 놀라 우왕좌왕했다. ‘아니 왜 멀쩡한 길을 두고 차도로 다니는 거야!’ 혹시 사람을 칠까 봐 무서워 숙이지 못했던 허리를 숙이고 운전석 아래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눌렀다. ‘제발 멈춰!’ 다행히 차가 멈췄다. 그런데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뛰어나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다고 우는데, 아이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고 싶다고. 그런데 자기가 불치병에 걸려서 죽는다고 했다고, 무섭다고. 너무나도 미안했다. 내가 이 아이의 마지막을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이게 차라리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번쩍 떴다. 아직 눈물이 흐르고, 놀란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있는데, 고요한 새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망과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마음이, 꿈인 것을 알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안을 되찾았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너무나 생생해서 사실 같았던 그 일들이, 모두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를 믿고 자기 아이를 맡긴 학생과 아이, 망가진 내 차, 터진 바퀴로 제 혼자 털털거리며 가던 모습, 유모차를 끌던 두 여자, 그리고 죽음이 두렵다며 울던 불치병에 걸린 그 아이. 가만히 떠올려보니, 모두가 내 마음의 수많은 나를 나타내고 있음이 알아진다.

이 세상도, 그 모든 인연들을 가만 살펴보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 혹은 드러내고 싶고 혹은 감추고 억눌러 놓은 내 마음의 나타난 바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거울이라고도 한다. 내가 웃으면 거울 속 내가 웃고, 내가 울면 거울 속 내가 울듯이, 세상도 그러하다. 내가 준비가 안 되서 떠나보내지 못한 내면아이는, 그러나 내가 성장함에 따라 가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좀 더 진실하게 수행해야겠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본다. 나는 지금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는가. 나를 비춰주는 수많은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줘야겠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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