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훈 위원장] 미주 자치교헌의 제정과 미국종법사의 임명은 원불교 교단에 새 기원을 열었다. 이를 의결하는 자리인 원기105년 중앙교의회 총회와 원기106년 임시수위단회에 참석한 교단 구성원들은 교단의 역사적인 발걸음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대종사가 이 나라에서도 가장 궁벽한촌으로 여겨지고 있던 영광에서 원불교 회상을 연지 100년이 조금 지나서 세계로 향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여건 때문에 온라인으로 중계된 미국종법사 임명식을 시청한 재가출가 교도들의 감동도 그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과연 지금 우리 교단이 이런 큰 발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제대로 되었느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교화의 위기’를 누구나 언급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이런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정당한 문제 제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다수 구성원들의 극적인 감동과 소수 구성원들의 깊은 우려 모두 이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런 느낌은 지난 1월 말 원음방송의 의뢰로 미국으로 부임하기 직전의 죽산 미국종법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더욱 깊어지게 됐다. 감격 쪽이든 우려 쪽이든 교단의 많은 구성원들이 미주총부의 출범을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놓은 ‘원불교 교단의 외연 확대’ 정도로 여기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화 정체, 아직 열악한 교단 재정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지금 우리 교단의 내실을 다지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주 자치교헌의 제정과 ‘미국종법사’라는 호칭을 사용한 의미는 실은 미주 대륙에 강한 자치력을 가진 ‘원불교 형제 교단’을 탄생시키기 위한 의지를 표명하는 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 대로 내실을 다지는 일에 집중하고 미국총부는 자치력을 키워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죽산 미국종법사는 인터뷰 도중에 미국사회가 가진 높은 실용 정신과 영성을 중시하는 최근의 경향을 언급하면서 여기에 가장 잘 부응할 것으로 판단되는 대종사의 법을 어떻게 미국사회에 편만하게 할 것인가가 미국총부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아직은 국내 여느 교구보다도 교세가 미약하긴 하지만 미국사회의 장점과 잘 결합한다면 미주 원불교 교단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하다는 깊은 확신을 표명하기도 했다. 

필자가 던진 가톨릭 교단의 교황과 각국 추기경의 관계와 비교하는 질문에 중앙종법사와 미국종법사의 관계는 ‘마치 형제 사이와 같아질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답하면서 미국총부의 ‘자치’에 강한 방점을 찍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체스코 교황이 탄생하였듯이 먼 미래가 되겠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종법사가 중앙종법사로 선출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의 미주 동서부 두 교구 체제를 벗어나 자치력을 가진 미국총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중앙총부의 지원이 한동안 계속돼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미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언젠가 지금 우리 교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미국총부가 만들어져 갈 것을 예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삼학팔조 사은사요 기본 정신을 살리면서 미국 정신에 맞는 조금은 다른 교단으로 커가야 ‘미주 자치교헌’ 제정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막 부임한 미국종법사는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떠났다. 미국 현지의 재가출가 교도들도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미국종법사 임명식을 시청하며 감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도 통할 수 있는 소태산 대종사의 법이 세계 방방곡곡에 편만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4대1회 설계특별위원회

[2021년 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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