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허 교무
문향허 교무

[원불교신문=문향허 교무]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인 딸이 학생들과 ‘1987’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면서 “아빠는 그때 뭐했느냐”고 묻는다. “아빠가 원불교학과 편입해서 3학년 때인데, 시위에 참여해서 힘을 보탰지”라고 답했다. 또 묻는다. 1980년 서울역 시위장면을 보여주면서 이때는 뭐했느냐고. 나는 “그때는 대학 2학년 때인데 서울역 앞 시위에 참여했었지”라며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언급하고 내친김에 교과서에 소개되지 않은 전후 사정과 배경, 나아가 촛불 혁명까지 한국현대사를 설명해줬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켜보면서 5.18 민주화 운동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권력을 지키려는 군부의 탄압 과정과 총칼에 맞서는 국민들의 저항이 시기와 지역을 달리할 뿐 그 본질은 똑같다는 것이다. 한국에 체류 중인 미얀마 유학생과 노동자들도 ‘현 미얀마의 상황은 5.18 민주화 운동과 유사한 상황으로 한국과 비교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한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 항쟁은 군부가 아웅산수치를 구금하고 실권을 장악한 2021년 미얀마 쿠데타에 반발해 미얀마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운동이다. 2월 4일 미얀마 수도 양곤 등 일부 지역에서 최초로 반군부 거리시위가 일어나 7일 10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8일 전국 16개 도시에서 시위가 이어지자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9일 이후 군부는 유혈진압에 나서 무차별적인 실탄 사격을 가해 국민들의 희생은 늘어가기 시작했다. 

2월 28일 무차별적 폭력이 자행되는 가운데 경찰의 무력진압을 막아내고 시민들을 보호한 수녀의 사연이 알려져 감동을 줬다. 안 누 따옹 수녀는 무장 경찰들의 행진을 무릎을 꿇은 채 혼자 막아섰다. 경찰관들은 행진을 멈추고 총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이 수녀는 영국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쏘면 기꺼이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스님들은 이 운동에 소극적 방관으로 대응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3월이 되자 군경의 유혈 진압은 갈수록 강경해져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500여 명이 넘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그 잔인함이 도를 넘은 지 오래다. 

2월 26일 우리나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및 민주주의 회복과 구금자 석방 촉구 결의안을 가결해 힘을 보탰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1980년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과 그에 따른 군사적 폭력경험을 바탕으로 미얀마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다”며 “미얀마 쿠데타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난한다”는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공통된 심정이라고 본다. 광주 서구는 미얀마인들을 돕기 위한 후원금을 모아 관련단체에 전달했고 지방의회도 잇달아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국 주요도시에서 미얀마 민주화 시위 도중 숨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집회가 진행됐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도 3월 18일 미얀마 민중항쟁지지 성명서를 발표하고 연대와 합력을 다짐했다.

교단에서는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소속 연대단체들의 공동발의로 20일 성주성지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와 안정을 염원하는 평화기도회를 시작하고 29일까지 모금운동을 펼쳤다. 광주전남교구와 영광교구도 27일 5.18 민주광장에서 위령재를 주관하고 추모행진을 전개하고 있다. 새삼스레 5.18 당시 우리 교단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되묻게 된다. 우리 교단도 5.18, 6.10 민주항쟁, 반핵 시위, 사드 반대,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내공이 단단해졌다. 다만 최근 지도부에서 대사회 의견 발표 시 ‘원불교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법복을 입지 말라’는 의안을 다루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안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일산교당

[2021년 4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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