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엽 교무
유정엽 교무

[원불교신문=유정엽 교무] 다시는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와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공을 차는 모습들이 과거의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옛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옛날 일생을 남을 많이 도우며 선(善)하게 산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섰다. 염라대왕이 칭찬하며 다음 생에 부자나 왕으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것은 바라지 않고, 그저 부모·형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일생 무탈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염라대왕은 한마디로 답한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내가 가겠다.”

아무 일 없는 편안한 그런 날이 있을까?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산에서 흐르는 물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었던 날도, 성희롱에 대한 걱정 없이 지나가는 아기들을 안아줄 수 있었던 날들도 모두 과거가 됐다. 그렇게 이별과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 당나라 우무릉은 권주(勸酒)에서 술을 권하며 말한다. 

“그대에게 금빛 술잔 권하니(勸君金屈巵) 가득 채운 술 사양 마시게(滿酌不須辭) 꽃피면 비바람 잦은 법(花發多風雨) 세상살이 이별로 가득 차 있네(人生足別離).” 몇 해 전 김도공 교무님이 열반했다. 인문학은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추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교수로 임용되고 이후 끊임없는 정진으로 학자로서 역량이 만개해 자신의 학문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직전에 떠나신 것이다. 

교단은 교단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개인적으로도 학문적으로 부족하고 세상살이가 어두운 후배를 이끌어주고 돌봐주는 특별한 선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과 함께 만들어간 나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로부터는 선배님이 생각날 때면 무슨 주문처럼 ‘꽃이 피면 비바람이 잦은 법’이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꽃이 피면 비바람이 잦은’ 이유에 대해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이라고 답해주셨다. 은혜가 해독(害毒)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해독은 은혜로 인해 만들어진다는 말씀이다. 동양은 전통적으로 음양(陰陽)이라는 관점으로 변화를 이해했다. 겨울은 음(陰)이 성할 때나 음 가운데 양(陽)이 포함돼 있으므로 양이 차차 힘을 얻어 마침내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며, 여름은 양이 성할 때나 양 가운데 음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음이 차차 힘을 얻어 마침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인과품 2장). 우리의 삶에서 좋은 것으로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일도 있고 반대로 나쁜 일이 오히려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말씀이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도 그렇다. 이 병이 자본주의의 탐욕 때문이라는 쉬운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국가 단위가 병과 세균으로 인해 사라진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태에서 세계화라는 축복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지금의 이 고통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헐벗고 굶주리던 과거의 기억을 단절하고 어느새 국가의 능력과 국민의 의식 모두 선진국으로 성장한 자신을 확인하게 됐다. 그야말로 은생어해 해생어은이 아닐 수 없다. 

선배님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인생 곳곳에서 다시 이별과 불행은 찾아올 것이며, 인류는 또 다른 병과 재앙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는 것처럼 또 다른 만남이 찾아올 것이며 감사와 행복의 길을 찾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그 모든 병과 고통을 이겨낼 것이다. 코로나19 역시 그러할 것이다.

/양평교당

[2021년 4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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