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교도/화정교당
김도훈 교도/화정교당

[원불교신문=김도훈 위원장] 정산종사는 법어 무본편에서 매우 실감 나는 법문을 내려주셨다. 딸 셋을 출가시킬 때마다 벼 한 말씩을 주었는데, 첫째 딸은 식량으로 소비해 버리고, 둘째 딸은 기념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셋째 딸은 그 벼를 종자로 삼아 농사를 지어서 잘살게 됐다는 법문이다.

대종사가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을 개교의 동기로 밝혀 줬는데, 과연 우리 후진들이 어느 정도 그 대원(大願)을 이루어드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둘째 딸과 같은 자세로 이 소중한 벼 한 말을 잘 관리하는 자세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불교 교도들은 ‘이 법이 얼마나 좋은데’, ‘어느 성자가 내려주신 법보다도 더 실천적이지’라고 하며 자부심을 키워왔고, 외부의 종교학자, 철학자들이 원불교를 높게 평가하는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하곤 하여 왔다. 그렇게 자부심 큰 원불교 교법을, 그런 대종사님의 실천적 가르침을 세상에다 펼치는 ‘법장사’에 우리가 얼마나 나서 왔는가를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교단의 여러 구성원들과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화를 나눈 결과, 지금까지 우리 교단이 교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고 수행을 독려해서 법위를 향상시키는 데에 교화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 물론 교도들에게 연원 달기에 나서기를 장려하고 있으니 그 점에서 어느 정도 ‘법장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각의 폭을 조금 더 넓혀 보면, 대종사가 목표로 삼은 ‘일체 생령’이 원불교 교도나 원불교를 아는 사람들에만 한정되는 개념일까? 대종사가 펼친 삼학 팔조, 사은 사요의 교법이 어디 우리 원불교도들만이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살아야 할 교법인가? ‘상시응용주의사항’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 생활에 응용해서 살아야 할 법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 원불교 교도들이 아닌 세상 사람들에게 대종사의 위대한 정신을 알리고, 대종사가 새로운 종교로서 원불교를 왜 펼쳤는지 알리는 노력을 더욱 열심히 해야 셋째 딸처럼 훌륭하게 농사를 지어 집안을 일으키는 ‘법장사’를 성공적으로 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우리 원불교 교도들의 대종사 가르침에 대한 신심과 원불교 교단에 대한 공심은 더없이 장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가 됐다. 지금부터라도 ‘법장사’에 나서야 한다. 이런 법장사에는 출가, 재가 가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세상 사람들에게 ‘응용하는 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서, 바로 원불교 교도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종사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법장사를 위한 큰 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로, 혹은 지금 우리 교도들의 신앙·수행을 이끌기 위한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법 높은 법사님들이 대종사의 법을 잘 버무려서 세상을 향해 사자후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젊은 교무들이 20·30대 젊은이들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종사의 말씀을 전하는 노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불교 교도들과 세상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은혜를 나누는 장’을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로 가자는 말이다.

대종사는 힘들여 완성한 정관평 방언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해서 ‘이곳에서 소출한 곡식이 세상 사람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데 쓰일 수 있다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일체 생령’을 파란고해에서 건져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로 인도할 꿈을 꿔 보자.

/4대1회 설계특별위원회

[2021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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