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옛날에 한 농부가 병 속에 거위를 한 마리 넣고 키웠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거위는 병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어떻게 새를 꺼낼 수 있을까? 단, 조건이 있다. 병도 깨지 말아야 하고, 새도 다치지 않아야 한다.

학부 때 이 화두를 듣고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아무리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봐도 도무지 새를 꺼낼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따금 화두를 푸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에서는 어쩐지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서 그저 마음 한편에 가지고만 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 ‘원불교 주유소’의 박근삼 교무의 설교를 듣던 중 호리병 새가 나왔다. 이 화두는 당나라의 남전선사와 육긍이라는 대부의 대화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육긍 대부는 당시 남전선사가 있던 지양 땅의 행정책임자인 태수 신분으로 남전선사를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하루는 대부가 문제를 내겠다며 이 병 속의 거위를 어떻게 꺼낼지 물었다. “스님이시라면 병 속에 든 이 거위를 어떻게 꺼내시겠습니까?” 대부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남전선사는 대뜸 대부를 불렀다.

“대부!”
“네.”

반사적으로 대답한 대부에게 남전선사가 답했다. “벌써 나왔습니다.” 
눈이 번쩍 하는 사이에 박 교무가 설교를 이어갔다. “그렇게 나오시는 거예요.” 

통쾌했다. 아, 그래, 그렇게 나오는 거다. 호리병에 딱 갇혀서, 내 몸에, 번뇌 망상에, 원래 하던 것들에 꽉 막혀서, 도무지 생각만으로는 해결할 방도가 없을 때, “신오야!” 하면 “네!” 하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몸, 육근을 가지고 살면서 업을 짓지 않을 방도가 없다. 대종사는 이 업을 지어 나아갈 때, 적극적으로 악업은 짓지 말고, 선업을 지으라고 했다.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사은사요 삼학팔조로 혜복을 지으라고 가르쳐 줬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을 감으면 눈 감은 데 떨어지고, 눈을 뜨면 눈 뜬데 떨어진다. 그동안 인과를 모르고 욕망대로 살며 몸과 마음을 길들여온 중생의 습관이 깊기 때문이다.

병 속에서 먼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눈 감은 데도 떨어지지 않고, 눈 뜬 데도 집착하지 않는다. 병 속에서 먼저 나와야, 불생불멸에도 떨어지지 않고, 인과보응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집착하지 않을 때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울 때 지혜가 나온다. 인과의 세계는 단박에 알 수 없어 한 경계 겪을 때마다 지혜를 얻는 수밖에 없지만, 그 일을 겪는 내 마음이 집착된 바 없이 청정하고 고요해야 그것이 지혜가 된다. 스스로 옳다는 무지의 독단이 되지 않는다. “신오야!” 하고 불러본다. “네!” 참으로 통쾌한 날이다. 참으로 감사한 날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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