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지난 7일, 미주선대 원불교학과 평생교육원(WonLAB)에서 ‘깨달음과 회복(Awakening and Renewal)’이라는 주제로 웨비나(webinar·웹 사이트에서 진행되는 세미나)를 가졌다. 송상진 미주선대 교무가 기획한 이번 웨비나에는 로말 스몰스 침례교 목사, 상지타 코우위스크 힌두교 교목, 박도연 원불교 맨하탄교당 교무가 패널로 토론을 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내며, 각자 다른 신앙을 가진 세 사람의 성직자들이 본인들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있는 깨달음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가운데, 박도연 교무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 왔다. “저는 깨달음이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기. 얼마나 많이 듣는 말인가.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다른 것들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배운 것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경험한 바가 다르다. 설사 그 모든 것이 같은 상태에서 같은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가 또 얼마나 다른가. 다르다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것은 인과보응의 이치를 따라 생멸하는 것, 즉 변하는 것이다. 

박 교무가 말을 이어갔다.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체험했다는 것도 결국 자기가 가진 생각에서 나오는 겁니다.”

체험은 중요하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으로 실천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험도 생멸하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체험, 똑같은 체험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이 ‘내 체험이 맞다, 혹은 내 체험은 특별하다’며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게다가 체험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다.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과 예수의 깨달음, 기타 모든 성현들의 깨달음과 대종사의 깨달음이 달랐다면, 대종사는 이를 두고 ‘우주만유의 본원’, ‘제불제성의 심인’,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고요하고 청정한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좌선을 하고 염불을 할 때도 있었고, 어리석고 화날 때도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그러하고, 어제도 그러했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본인의 작은 체험을 가지고 스스로 깨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국에도 정말 많이 있다. 시대가 달라져서 이제는 사리연구 공부를 조금만 하면, 깨친 사람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대종사는 돌아오는 세상에는 견성만으로는 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며, 거개의 수도인들이 견성은 집에서 일찍 쉽게 마치고, 성불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다니며 공을 들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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