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요즘 명상 관련한 강의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자아·자아의식·나를 내려 놓아라(Let go of Ego)’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라는 한 생각에서 오는 분별과 번뇌 때문에 그런듯하다. 고정된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no self)’에 대한 개념은, 때로 ‘나’를 놓으면 깨달음을 얻거나, 혹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나’라는 자아의식을 놓으면 정말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몸을 받고 살아가면서 ‘나’라는 의식을 놓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라는 의식은 인간을 생존하게 한다. 배고플 때 배고픔을 느끼고 내가 배가 고프구나, 밥을 먹어야겠다 하고 밥을 먹고, 추울 때 추위를 느끼고 내가 춥구나, 옷을 껴입어야겠다 하고 옷을 입는 등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나’에 대한 의식이 당장 내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야 생존에 유리하다.

‘나’라는 의식은 또한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 대종사도 인간을 두고, ‘최령한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동물의 몇 배 이상’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라는 의식이 있기에 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보통 사람의 욕망을 넘어 대종사와 같은 제생의세의 서원을 세우기도 하고, 혹은 욕심을 제어하지 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자기를 망치기도 하고 가정과 사회를 망치기도 한다. 대종사는 ‘무아’를 정전에서 딱 두 곳, ‘교리도’와 ‘사대강령’에 쓰셨다. 바로 ‘무아봉공’이다.

여기에서 대종사는 ‘나’라는 생각을 개인 혹은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으로 확대하고, 우리가 버릴 것은 바로 그런 이기적인 생각과 그에 따른 행동이라고 한다. 개인 혹은 소속한 가족이 나라고 하는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을 버린 ‘나’는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일원상이다. 대종사는 이 일원상과 같이 온전한 나를 법으로 길들여 이타적 대승행을 통해 일체중생을 제도하는데 함께 마음과 뜻을 다하자 했다.

‘나’는 지금 여기 인과의 세계에서 뜻을 세우고 그 뜻에 따라 육근으로 업을 지으며 살아가고 그에 따라 호리도 틀림없는 인과를 받는다. 그래서 어떤 뜻을 세우느냐가 중요하다. 중생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뜻을 세우느냐, 아니면 불보살의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뜻을 세우느냐. 일원상으로 일체생령을 제도하겠다는 일원상 서원을 세웠을 때 그 마음을 바룰 수 있다. 마음이 온전할 때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이 성품에서 영령하게 드러난다. 경계를 당하여 ‘나’라는 한 생각이 들었다면, 공부할 때가 돌아왔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리라고 했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자. 일원상 서원으로 뜻을 세워 오래오래 하면 된다고 했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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