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몇 달 전, 함께 근무하는 잭(가명)이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고객 중 한 사람인 메리(가명)라는 여성이 전화번호를 주고 갔다고 했다. 그 뒤로 잭은 메리와 문자와 전화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메리를 보내준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니 나도 늘 마음이 행복했다. 두 사람은 백신을 맞은 뒤 만나기로 했고,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얼굴에 환한 빛이 나는 잭에게 건투를 빌었다.

월요일 아침. 잭에게 웃으며 데이트 잘했냐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다. 조심스레 물으니, 메리는 잭을 좋은 친구로 생각했지 연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한 며칠, 잭은 다른 사람 같았다. 세상 밝고 행복하던 잭은, 머리 위에 비구름을 두고 다니는 듯, 빛을 잃고 어두웠다. 늘 하던 농담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조용히 무표정으로 일만 했다. 

가끔 산책 가는 길이 며칠 전부터 지저분하다. 위를 올려다보니 오디나무 가지에 오디가 가득 달려있는데, 아무도 따지 않는지 익을대로 익은 큼지막한 오디가 바닥에 떨어져 어지러이 뭉개져있던 것이다. 산책을 하며 오가는 길에 몇 개씩 따먹고는 했다. 뜨거운 여름에 그 서너 알 오디가 참 반갑고 감사했다.

엊그제도 갔는데, 그렇게 많이 떨어지고도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보물을 발견한 듯 큰 오디를 몇 개 따서 손바닥 위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런데 뭔가 꿈틀거린다. 뭐지? 하는 순간 오디 알 사이로 꿈틀거리는 수많은 빨간 작은 벌레들이 보였고, ‘으악!’ 하면서 순간 오디들을 풀숲으로 던졌다.

행복했던 잭의 세상은 메리의 한 마디로 우울하고 슬픈 세상이 됐고, 은혜롭고 감사하게 먹던 오디는 꿈틀거리는 벌레들로 인해 징그럽고 먹지 못할 것이 돼 풀숲에 버려졌다. 몇 걸음 떨어져 오디나무를 바라보며 궁금해졌다. 전날 밤 달게 마신 물이 해골에 고여있던 물인 줄을 보고 구역질을 하던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를 깨쳐 마음이 밝아졌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일까. 다 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일까? 잭이 한 마음 먹으면 슬픈 마음이 기쁜 마음으로 변하고, 벌레를 보고 징그러운 그 마음이 내가 안 그래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징그럽지 않게 된다는 말인가?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바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한 마음에서 드러난다는 말이다. 잭의 그 마음은 메리의 전화번호를 받기 전에도 있었고, 받고 나서도 있었고,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듣는 가운데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다. 탐스러운 오디를 보기 전에도 있었고, 맛있게 먹을 때도, 벌레를 보고 놀랐을 때도, 그 후에도 있었다. 생멸하는 그 모든 마음의 작용이 불생불멸하는 마음 바탕에서 인과 따라 그대로 드러났을 뿐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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