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교무
원익선 교무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불법은 고통이 많은 시대에 반드시 그 사자(使者)들을 보내 중생을 구제한다. 카스트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에 속했던 암베드카르는 평생 그들의 해방을 위해 살다갔다. 간디와도 친했고, 인도 건국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건국헌법을 제정하는 데에 앞장서는 등 치열한 정치의 일선에 있었다. 그는 1927년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인도 전통의 마누법전을 불태우는 운동을 벌였다. 

1956년 불교개종식을 단행, 이틀 만에 50만 명의 불교신자를 탄생시켰다. 여기에서 “나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을 포함한 22가지 서약을 선포했다.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은 남미의 해방신학, 미국의 흑인신학, 한국의 민중불교운동과도 비견된다. 이 불교혁명의 기초는 그가 말하듯 불타의 가르침에 의한 자유, 평등, 우애이다.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 후, 독립운동을 하던 티베트인 수십만 명이 살해당하고, 사원은 초토화되었다. 수많은 승려들이 분신으로 항거했다.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는 인도로 탈출하여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전 세계를 돌며, 전쟁과 폭력의 종식을 호소하고 있다. 그로 인해 세계는 대승불교의 정점에 있는 티베트 밀교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종차별, 종교 갈등,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그는 중국을 자신들의 스승으로 본다. 자비와 인내 계발의 기회이자 원수는 가장 좋은 스승이기 때문이다. 증오는 증오로 갚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사성제를 공성(空性)에 기반, 지구의 문제에 적용하거나 육바라밀을 이타주의에 의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틱낫한은 “모든 불교는 삶에 참여한다”는 참여불교를 주장하며,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사회활동에 노력해왔다. 1966년 접현종(接現宗)을 창립하고,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제안서를 통해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베트남 정부에 의해 귀국금지 조치를 당하자 1973년 프랑스에 망명했다. 종전 후에는 베트남 난민을 구제했다. 1982년 프랑스에 플럼 빌리지를 설립하고, 세계 각지에서 불법을 전파하고 있다. 

불법에 의거 현대문명의 치유와 대안을 제시한 백여 종이 넘는 책을 발표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영육의 움직임과 변화를 놓지 않는 의식인 전념(專念)을 기반으로 씨앗, 전환의 주요 개념에 의한 수행론을 펼친다. 또한 무아를 상호존재라고 표현하며, 5계를 일상의 삶 속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해석한다.

소태산 대종사 또한 현대문명의 한계 극복을 위해 불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지향했다. 불법의 구루(Guru)들은 시공을 초월, 같은 일을 다르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야말로 법신불의 화신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원광대학교

[2021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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