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미주선대 캠퍼스 이전과 이안봉불식 준비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드디어 기다리던 전무출신 훈련이 돌아왔다. 그동안 정성을 쏟지 못한 좌선에 공을 들이며 가뭄에 단비 같은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선정진 시간에 단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를 봤다. 그렇게 앉아있는 것이 좋을 수 없었다.

다음 선정진 시간이 돌아왔고, 단전으로 호흡을 깊이 내리며 전 시간에 보았던 진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빛나던 진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음 선정진 시간에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진리가 준 선물을 잃어버렸는가. 

그러다가 문득 무릎을 쳤다. ‘내가 경험에 집착했구나!’ 

경험은 생멸하는 물질이다. 좌선을 하는 중에 진주를 보았든, 북유럽으로 날아가 오로라를 보든, 꿈에 대종사를 뵈었다 한들, 그 어떤 경험도 생각으로 남았다가 희미해지고 사라져간다. 생멸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은 물질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인연으로 이어진 인과세계의 특징이다. 문제는 여기에 집착하면서 생긴다.

대종사가 『정전』에서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좌선의 방법’에 나오는 것으로 하나는 망념이 침노할 때 다만 망념인 줄만 알면 스스로 없어지므로 ‘절대로 그것을(망념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은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라’한 것이다.

공부하는 이에게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는 정말로 큰 유혹이 된다. 그 특별한 체험을 붙들고 있으면 주위에 뭔가 그런 특별한 것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따른다. 사람이 따르면 재와 색이 따르기 마련이다. 재색명리에 빠지면 스스로 정신 차릴 때까지는 가려져서 답이 없다. 진짜 항마위에 올라 법이 백전백승하지 않을진대, 누가 감히 재색명리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특별한 체험이 생멸하는 경험임을 알게 되면, 남들의 특별한 경험담이나 수행담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 역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미 멸한 과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수행 중 특별한 체험을 했다며 자신을 우위에 두려 한다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생멸의 체험을 여태 붙들고 있구나 하고 심상히 간과하면 된다. 대종사는 이러한 것들을 두고 수행하는 도중 “반딧불 같이 나타나는 허령에 불과한 것들이니 정신차려 그 마음을 제거하라” 했다. 여기에 낙을 붙이면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사도에 떨어져 아수라의 유가 되기 쉽다고 했다. “망념! 망념이에요. 성불하는데 하나 필요 없으니 당장 버려요!” 따끔하게 혼을 내며 아쉽게 체험을 붙들고 있던 마음을 버리게 도와준 선배 교무에게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의 일원상을 챙긴다.

[2021년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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