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대종사는 우리가 ‘동포보은’을 할 때 자리이타에서 감화를 받은 모든 동포가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나 자신도 옹호와 우대를 받는 것은 물론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평화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세상이 온다고 했다. 「동포은」의 보은의 강령은 ‘자리이타의 도’이다. 나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동포 보은의 조목’에는 ‘사농공상’이 어느 때에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로 보은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온다. 과거에는 ‘사농공상’이 직업의 귀천을 나타내는 말이었지만, 「동포은」에서 ‘사농공상’은 대종사가 절대평등의 일원상의 견지에서 다만 직업을 크게 분류하는데 사용한 말임을 먼저 염두에 두자.

또한 여기에서 ‘사농공상’은 정해진 직업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사농공상의 때’를 가질 수 있다. 개인사업 하는 사람이 친구를 만나 식사를 살 때가 됐다면, 그것은 음식을 제공하는 때를 당한 것이다. 현장에서 교화를 하던 교무가 위를 얻어 교단의 행정조직에 발령을 받으면, 그것은 정사를 할 때를 당한 것이다.

누구든지 이렇게 학술을 가지고 교화를 한다거나 정사를 할 때를 당하면, 옷이나 음식을 제공할 때를 당하면, 머물 곳이나 주거지, 수용품을 공급할 때를 당하면, 혹은 천만 물질, 물건, 돈 등을 교환할 때를 당하면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로써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무수한 인연관계 속에 교류하는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누구든지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로 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자리는 일원상이다. 일원상을 8가지로 설명한 천지팔도에서 ‘공정한 도’는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에 끌리지 아니하고 오직 중도를 잡는 것’을 말한다. 원근친소와 희로애락 감정의 분별 주착이 없는 공정한 일원상의 자리에서 분별을 해야 바른 분별이 되고 자리이타가 된다.

공정하지 않으면 신뢰가 깨지고, 신뢰가 깨지면 그 불신으로 인해 불화와 갈등이 생긴다. 병든 사회가 되는 것이다.

공정한 자리를 여의지 않고 자리이타 하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불생불멸에 바탕하여 인과를 건설하는 일원상임을 알 수 있다. 중생은 욕심에 가리어 나만 이롭게 하기가 쉽다.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해 스스로 번뇌를 만들고 주위를 시끄럽게 한다. 부처가 되어 능이 나기 전에는, 차라리 본인이 희생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이렇게 나만 이롭게 하든, 혹은 남만 이롭게 하는 경우에는 내적 외적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상을 남긴다. 

당장의 과보가 보이지 않아 모를지언정, 한 포태, 동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과는 호리도 틀림없이 작용한다.

[2021년 8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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