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선 영산선학대 교무

김인선 영산선학대 교무
김인선 영산선학대 교무

[원불교신문=김인선 교무]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하실 때 일입니다. 5명의 비구를 데리고 왕사성으로 가는 도중에 마침 농부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장소에 이르게 됐습니다. 공양도 받고 교화 인연을 맺기 위해서 농부들에게 밥을 청했더니 “이 밥은 우리와 같이 땀 흘리고 일하는 농부들만이 먹는 밥이요, 당신들 같이 한가하게 놀고 다니는 사람들이 먹을 밥이 아니니 주지 못하겠다”하고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렇다면 우리도 농부니까 같이 먹게 해주시오”라 하니 농부가 “손이 곱고 얼굴이 하얀 사람들이 무슨 농부냐?”고 책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당신들은 흙밭을 짓는 농부지만, 우리는 심전을 찾는 농부라 우리는 마음 밭을 갈며, 당신들은 모든 씨앗을 뿌리지만 우리는 신근종자로써 씨앗을 뿌리고, 당신들은 오곡으로써 수확을 얻지만 우리는 무상대도로써 불과를 거두어 얻게 되노라” 하시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농사 짓는 농부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수행품 59장에 심전을 잘 계발하는 사람과 심전 계발을 잘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밝혀주셨습니다. 

“심전을 잘 계발하는 사람은 저 농사 잘 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면 매고 또 매어 잡초는 없애고 농작물만 골라 가꾸어 가을에 많은 수확을 얻는 것 같이, 선악간에 마음 발하는 것을 잘 조사하고 또 조사하여 악심이 나면 제거하고 또 제거해서 악심은 없애고 양심만 양성하므로 혜복이 항상 넉넉할 것이요, 심전 계발을 잘못 하는 사람은 저 농사 잘못 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도 내버려 두고 농작물이 나도 그대로 두어서 밭을 다 묵히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는 것 같이, 악한 마음이 나도 그대로 행하고 선한 마음이 나도 그대로 행하여 자행 자지하는지라 당하는 것이 고뿐이요, 혜복의 길은 더욱 멀어지나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천만 죄복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이 심전 계발을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이 일을 어찌 등한히 하리요.” 

우리의 성품에서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이 저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 하여 우리의 마음 바탕을 심전(心田)이라 하고 밭을 잘 개척해 좋은 밭을 만들 듯이 우리의 마음 바탕을 잘 단련해 혜복을 갖추어 얻자는 뜻에서 심전 계발(啓發)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잊고 있었던 토지를 다시금 찾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선물을 주시었습니다. 현재 나는 심전을 잘 개발하여 복의 밭에서 사는가? 심전 개발을 잘 못하여 죄고의 밭에서 사는가? 곰곰이 생각해 들여보게 합니다.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밭에서 살아가
우리 현실에 나타난 모든 것은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진리의 밭을 잘 일구고 거름지게 가꿔가려면 진리와 법신불 사은님과의 맥을 통하지 않고서는 은혜롭게 살아갈 수 없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들은 우리의 마음 밭인 심전을 떠나서 이뤄지는 것은 그 무엇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진리에 근원하고 있고, 우리는 또한 진리와 하나의 맥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만물은 어제도 진리와 맥을 대고 더불어 살아왔으며, 오늘도 내일도 또한 진리에 맥을 대고 사은의 무한한 은혜와 보호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진리에 맥을 댄다는 것은 진리 즉, 사은으로부터 간섭과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로부터 간섭과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진리와 나와의 관계가 무촌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사람에게 서러운 일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육신의 부모가 안 계시어 고아가 되었음이요, 또 하나는 마음의 부모가 없어 마음 고아가 되었을 때이다. 육신의 부모가 안 계신 것은 단생의 고아이나 마음의 부모가 안 계신 것은 영생의 고아이다. 우리는 대종사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생각하면 할수록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보다 행복하다”하셨습니다. 우리는 일찍이 대종사님 일원대도 정법을 만났으니 마음 고아가 되지 않도록 심전 계발에 더욱 정성을 다하고, 신근종자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신맥과 법맥으로 일관해 가도록 스스로 서로서로 권장하며 신근종자를 꽃피워가야겠습니다.


마음공부에 뜻을 세운 공부인
어느 날, 선배 교무님 책상 책꽂이에 굵은 연필로 눌러 적은 글이 눈에 띄였습니다. 
“마음공부에 뜻을 세운 공부인은 비추고 비추며 관조하고 또 관조하여 살피는 공부로 진리와 나 사이에 맥이 끊이지 않도록 진실된 믿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공부인이 되도록 오늘도 다짐하고 내일도 다짐하며 어떠한 일일지라도 진리로부터 간섭받는 행복자임을 잊지 않고 정진해 가자.”저는 글을 읽는 순간 그 교무님의 삶에 정성과 자유로움, 담담함과 여유로움이 어디서 나오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자기 공부에 정성을 놓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진리와 선배 교무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맥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진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꾸준한 신성으로 정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믿음은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
대종사님께서는 신·분·의·성 가운데 “신이라 함은 곧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라 하셨습니다. 믿음은 이 마음을 결정하는 힘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나의 육근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한 학생이 훈련을 준비하면서 신에 대한 마음이 다시 서지게 됐다는 감상을 나누게 됐습니다. 그동안 본인이 하는 일 대부분은 끝마무리가 미흡하거나 그 일을 끝까지 성사시키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 훈련을 준비하면서 일을 할 때 그 일에 대한 믿음이 많이 부족했던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믿음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모든 일에 결말이 부족했고, 하면서도 방향이 바뀌면서 결국 일의 결과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훈련을 준비하면서는 도반들과 함께 준비하고 연마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믿음, 이 일이 잘될 거라는 믿음으로 일을 착수했더니 생각했던 것 보다 그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됐다는 감상을 듣게 됐습니다. 

농부가 아침저녁으로 오로지 농사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돌아오면 분명 저 들녘에서 수확할 것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그 무더위 속에서도 땀 흘려 농사일에 정성을 다합니다. 마음 밭을 일구는 심전 농사꾼인 저희는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한마음을 멈추어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눈앞에 당장 보이진 않지만 진리의 양 모습을 우린 조금이나마 믿고 알기에 육근을 존절히 사용하려 노력을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동이 있고 행동이 있는 뒤엔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주만물 허공법계와 우린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법맥과 신맥이 흐르고 있는가
정산종사님께서는 국운편 29장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새해를 맞아 믿음을 더욱 굳게 하라. 복과 죄는 다 내 자신이 짓고 받나니 먼저 내 자신을 옳게 믿으며, 허공은 소리 없고 냄새도 없으나 속일 수 없고 어길 수도 없는 위력이 있나니 이 진리를 철저히 믿고 받들라. 또는 희망을 잃지 말라. 영원한 세상을 통해 볼 때에 당장에는 아무리 난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이는 여진이 있고 진보가 있으리라. 또는 평화한 마음을 놓지 말라. 평화를 먼 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내 마음 가운데서 먼저 구하라. 어떠한 난경에 들었다 하여도 평화한 심경을 놓지 아니하여야 앞으로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는 주인이 되라.” 새 마음을 챙기면 늘 새날이요 새해라. 새해는 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챙기는 그 마음에 있다 하신 스승님 말씀을 되뇌어 봅니다.

나는 지금 믿음의 맥을 더욱 두터이 하고 진리와 나 사이에 법의 맥과 신의 맥으로 진리의 간섭과 보호와 절제 속에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과 무촌이 되어가고 있는가. 늘 함께하는 진리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게 합니다. 주변과 나 사이에 무엇이 흐르고 있나요? 동지와 나 사이에 무엇이 흐르고 있나요? 교단과 나 사이에 무엇이 흐르고 있나요? 지금 이 순간! 진리와 나 사이에 무엇이 흐르고 있나요?

[2021년 8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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