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교무
김경일 교무

[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진행 4조의 네 번째, 마지막은 성(誠)이다. 성(誠)은 정성의 뜻이다. 정전에는 ‘간단(間斷)없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만사(萬事)를 이루려 할 때에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보통 사전적으로는 ‘거짓 없이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풀고 있다. 

일이나 이치나 간에 정성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데 왜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매사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많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일의 성취가 나의 삶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철저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 일이 내 인생의 성공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면 눈을 부릅뜨고 달려 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는 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나를 성공으로 이끌고 새 삶을 의미 있게 열어 줄 것인가에 대하여 심사숙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정하면 그 목적에 이를 때까지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무쏘의 뿔처럼 외길로 용맹 정진해야 한다. 물론 가다가 장애물이 있어서 잠시 머뭇거릴 수는 있다. 쉬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가면 그게 정성이다. 단연코 말하지만 정성 없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내가 대학 시절 대산종사를 모시고 문답한 기억이 있다. ‘학기 초마다 정진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 용두사미가 되어 그런 제 모습이 싫고 이제 자신감이 없습니다.’ 하고 여쭈니 잠시 생각하시다가 ‘길을 가는데 열 번을 잘 가다가도 열한 번째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으면 못 간다. 열 번을 넘어져도 열한 번째 일어나서 가면 끝까지 간다’고 말씀하셨다. 난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하면서도 깊은 위로와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 정성이란 한 번도 안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면 일어나는데 묘미가 있는 것이다. 바느질을 하다가 실이 끊어지면 이으면 된다. 정당한 일에 발원하고 나아갈 때에 포기와 좌절은 없어야 한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것이 정성이다. 세간의 일도 그래야 하지만 특히 성불제중의 특별한 서원은 이렇게 오래토록 공을 들여야 한다. 

수심결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할 때 이치는 한 번에 몰록 알 수도 있지만 수행은 한발 한발 능(能)이 날 때까지 하고 또 하는 것이 정성이다. 이 정성이 없고 공부나 사업 간에 성취는 어렵다. 속담에 ‘개살구 모로 터진다’는 말이 있다. 정성은 서푼어치나 들이면서 결과는 열푼어치를 얻고자하면 이는 정성이 아니라 역리(逆理)를 행하는 것이다. 욕속심으로 큰일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참으로 큰일을 유감없이 성취하고자 하면 천지자연의 정성을 본받아야 한다. 

천지가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덕을 지닌 것은 정성함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이 이렇듯 살아 있는 것도 호흡과 심장이 쉬지 않는 까닭이다. 제불제성(諸佛諸聖)은 천지의 도(道)를 체받아서 생명을 온전하게 운전하는 분들이다. 이소성대(以小成大)는 천리(天理)의 원칙이요 지성불식(至誠不息)은 만사를 이루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천지자연의 도나 제불제성의 정성은 우리 공부인에게 롤모델이 된다. 지극한 정성체가 순환불궁하는 일원상진리요 지성(至誠)이 곧 신(神)의 참모습이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021년 10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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