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엽 교무
유정엽 교무

[원불교신문=유정엽 교무] 원기97년 소장도 없는 정책연구소를 1년간 지켰었다. 과도기에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교단의 운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하는 시간이 됐다. 숙제처럼 진행된 제7차 혁신세미나를 위해 ‘원기72년 교단 3대설계’와 ‘원기85년 3대 2회 종합발전계획’ 그리고 원기94년에 정책연구소에서 제기한 ‘10대 혁신과제’를 비교하고 진행된 성과를 점검한 후에, 우리의 혁신에 대해 세 가지의 문제를 발견했다.

첫째 우리 교단의 혁신은 ‘오래된 혁신’이라는 다소 모순되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원기94년에 정책연구소에서 발표했던 대부분 혁신과제가 20년 전인 3대 설계에서부터 제기됐던 개선사항이었다. 물론 교단의 발전에 필요한 정책과 사업의 본질은 시간의 흐름에도 큰 차이가 없기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채로 20년이 흘렀다는 것과 새로운 해결방법이 모색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달리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과 같이, 교단의 혁신을 위한 많은 사업이 ‘딱 맞아 떨어지는 거짓말’이 됐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도 예비교역자 교육기관은 크게 확장돼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교육의 내실에 대한 고민은 더해가고 있었으며, 신종교 최초로 청년교화의 황금어장이라는 군종에 합류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막상 원불교 청년회는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교화단과 훈련법으로 교도를 훈련시키고, 훈련된 교도는 그 인격의 개선으로 인해 주위의 모범이 되고 숭상을 받기에 교화가 활성화 된다”는 논리로 교화단과 훈련법을 핵심교화정책으로 삼았으나 역시 큰 성과가 없었다. 

셋째 교역자들이 ‘혁신은 원하나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혁신과제의 성과를 비교해 보면 대체로 소수의 팀이나 교정원의 적극적 노력으로 성과를 이룰 수 있는 부분들은 많은 진행이 있는 반면, 교무들의 생활이나 인사에 큰 영향을 주는 부분들은 진행이 더딘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교정원 서울 이전을 목적으로 시행됐던 서울회관 신축은 이전 없이 건물만 지어졌고, 모두가 급선무라던 전무출신 용금개혁은 교무들의 반대여론에 멈추었으며, 10년간 15%에 가까운 출석교도 감소에도 교화정책은 변화가 없다. 모두가 혁신을 말하지만 혁신에 따르는 변화는 용납하지 못했고, 내가 하는 혁신이 아니라 너희들이 책임지는 것이며, 결과를 보면 그 동기마저 의심하게 되는 혁신이다.

올해 벌어진 사건과 그를 해결하는 과정은 지도부와 변화를 바라는 대중 모두 너무나 미숙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혁신을 하기보다는 피동적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변화는 방향과 방법도 중요하지만 ‘동력’과 ‘주체’ 역시 필요하다. 우리에게 어떤 혁신의 동력이 있을까? ‘대중의 열망’은 변화를 위한 희생에 미치지 못하고 ‘정법에 대한 확신’은 초라해졌으며 ‘수위단회의 권위’는 우리의 공업으로 훼손됐다. 

또 혁신을 주도할 주체가 있을까? 오랫동안 후진들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사용됐을 뿐, 지혜와 능력을 성장시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굴욕을 참으며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 교단의 공의를 모을 수 있는 인재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올해의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도적으로 변화를 할 능력이 없는 혁신이란 초등학교 때 숨 쉴 틈도 없이 공부를 하겠다고 짜놓은 방학계획처럼 허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변할 수 있을까?

[2021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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