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교무들과 화상으로 공부모임을 하고 있는데 한 교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은 교무의 핸드폰 너머로 어린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제가 동생이랑 장난을 치다가 물건을 떨어뜨렸는데요. 장난을 같이 했으니까 너도 잘못이라고 했는데 자꾸 제 잘못이래요.” 세상 억울한 목소리다. 가만히 듣더니 알겠다고 하고는 동생을 바꾸라고 한다. “오빠가 장난쳐서 떨어뜨린거에요. 오빠가 잘못했으니까 오빠가 다 주워야지요.” 역시 세상 억울한 목소리다. 가만히 듣던 교무가 다시 번갈아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으니, 결국 서로 잘못하여 비즈가 들어있는 그릇을 떨어뜨려 떨어진 비즈를 모두 주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서로가 상대방 잘못이라며 이르던 아이들은 스스로 상황을 돌아보고는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더니 함께 떨어진 비즈를 줍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도품에 나온 대종사의 일화가 떠올랐다. 대종사가 아이들의 노는 것을 바라보던 어느 날이었다. 그중 두 아이가 별 것 아닌 물건 하나를 가지고 서로 자기 것이라 하며 다투다가 결국 대종사에게 해결해달라며 왔다. 옆에 있던 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기와는 아무런 이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대종사는 그 아이들의 시비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어른들이 보면 하찮은 것을 가지고 다투는 것으로 넘기지 않고, 정말로 억울한 그 마음을 그대로 잘 들어주지 않았을까. 자기 이해에 가려 다투고 힘을 쓰던 아이들은 대종사 앞에 억울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서는 상황을 돌이켜볼 수 있는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르겠는가. 자기와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는 점잖은 척 있을 수도 있지만 나와 직접 이해가 걸리면 마음에 전개되는 세계가 다르기 마련이다.  놓고 싸우는 것이 부모가 남긴 재산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쌓아올린 명예나 내가 가진 지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자기 이해가 걸린 문제 앞에서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은 그른 것이기 쉽다. 어리면 부모나 선생의 말이라도 듣지, 나이가 들면 누구의 말을 듣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을 보낸 뒤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이해를 떠나 남을 위하는 사람이 귀하다며 그렇게 마음이 투철하게 열린 사람은 대중이 공경해야 하고, 마음이 열린 사람은 대중을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일원상을 본 사람, 일원상을 실생활의 육근 작용에 활용하는 사람이 귀하다는 말이다. 중생의 집착과 욕심에서 비롯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시 그 마음을 밝혀 일원상으로 인도하는 대종사의 자비와 지혜를 마음에 새기며 마음에 일원상을 세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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