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휴스턴교당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나사(NASA)가 있다. 새턴 V 라고 쓰여진 관에 가면 실제 우주선 아폴로 17호를 전시하고 있다. 아폴로 17호는 다단계 로켓으로 연료통을 여러 개로 나눠 장착하고 있다. 로켓의 무게는 대부분 연료가 차지하는데 무게를 줄여나가기 위해  발사 이후 연료가 종료하는 하단의 연료통을 버리며 올라간다. 로켓의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로켓은 같은 힘으로 더 멀리, 더 빠르게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다. 문득 한 생각이 든다. 로켓 전체의 작은 일부를 우주 궤도로 올리기 위해서 저렇게 크고 많은 연료통들이 필요한데, 중생이 부처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공력이 필요할까.

유상으로 보면 부처나 범부 중생이 모두 일원상이다. 언어가 끊어져 한 생각 청정하고 고요한 그 자리에서는 나고 죽음이 없고. 가고 옴이 없고, 크고 작음이 없고, 예쁘고 미움이 없으므로 부처다 범부 중생이다 하는 모든 분별과 주착이 없다. 하지만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사생의 심신 작용을 따라 인과를 짓고 받으며 무량 세계를 전개한다.

‘부촉품 14’에서 대종사는 불보살들은 생사거래에 매하지 않고 자유하고, 범부 중생은 그 거래에 매하고 부자유한 것이 다르다고 했다. 생사는 육신의 나고 죽음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고 죽는 것은 오고 가는 것으로 즉 변화하는 모든 것이다. 

이 육신이 나면 죽듯이 부모와 아내, 남편, 자식,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인연이 오고 가며 변화한다. 내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이 시간이 지나 그 인연이 다해 떠나듯이 집도 자동차도, 옷도, 돈도, 명예도 오고 가며 변화한다. 내가 지은 인연따라 한 생각이 올라 왔다가 때를 따라 사라지듯이 내 것인양 생각하던 지식도, 생각도, 예쁘고 밉고 좋고 나쁜 그 모든 감정들도 또한 생사의 이치를 따라 변화한다. 이런 인과의 세계 속에 수없이 반복해 지어놓아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도 심신이 작용하는 중생의 습관은 그 얼마나 무겁겠는가.

승산 양제승 종사가 일원상과 함께 늘 강조하던 대종경선외록의 말씀이 있다. 대종사가 ‘내 법대로만 하면 예전에 상근기가 백년 걸려서 할 공부라도 나에게 와서 1,2년만 닦으면 그 공효를 이룰 것이다’고 한 것이다. 그 두터운 중생의 업장도 대종사의 법대로만 하면 과거에 비해 빠른 공을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우리가 대종사의 법대로 하느냐이다. 대종사의 법대로 한다고 해놓고 다른 것들을 여기저기서 끌어와 마치 대종사의 법인양 이야기하고, 빨리 되지 않는다고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다. 대종사는 여기 와서도 딴 길을 바라는 이들은 천만년을 구할지라도 다 허사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이 법을 만나고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11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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