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그는 어느 때 어느 장소인 삶의 고비마다 그런 평정심을 보여줬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 오래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평정심은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재산’의 하나다. 그런 마음을 유지하려면 마음에서 ‘힘’을 빼야 한다. 야구선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축구선수의 발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면 공이 엉뚱한 데로 가듯, 평정심을 가진다는 것은 몸에서 힘을 빼듯 마음에서 힘을 빼는 것이다. 욕심과 집착을 가지면 자연히 몸에 힘이 들어가고 마음에도 힘이 들어가게 된다.

평정심은 평상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6조로부터 내려온 조사선을 크게 진작시킨 마조도일 선사의 말대로, “평상심이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斷常)이 없고 범성(凡聖)이 없는 것이다.”그 후 남전보원 선사는 그의 제자인 조주(趙州)가 “무엇이 도(道)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평상심이 도이다”라고 응답했다.

라즈니쉬는 에이즈가 창궐할 때, 그러니까 미국에서 쫓겨난 후 동가식서가숙 할 때, 그리스에서 에이즈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독설을 남겼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그대들도 에이즈가 인간의 방탕함에 대한 신의 저주라고 생각하는가? 확실히 에이즈는 신의 저주다. 그러나 인간의 방탕함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에이즈는 신의 저주이다. 왜냐면 독신을 주장하는 교회의 가르침 때문이다. 독신은 자연에 어긋난다. 신부와 수녀를 격리시키는 것은 자연의 도리에 맞지 않다. 그런 반 자연적인 태도는 동성연애를 촉발시킬 수밖에 없다. 동성연애는 종교적 질병이다. 그 책임은 교회가 져야 한다. 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 왜냐면 기독교에는 신의 삼위일체가 있기 때문이다. 성부(신)와 성자(예수) 그리고 성령인데 (…) 이 성령이란 사나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삼위일체에는 여성이 없다. 그들은 게이(gay)들의 모임이다. 아마 이 성령이란 사나이는 신의 남자 친구였을 것이다.”

그리스 크레테 섬의 대주교는 온갖 비신사적인 수단으로 대응했는데, 그것은 성직자들의 위선을 폭로한 라즈니쉬의 말을 사실대로 입증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디미트리오스(Dimitrios)주교는 이렇게 협박했다. “그가 당장 가르침을 중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폭력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 섬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지역 신문에는, 저택에 다이나마이트를 설치해서 라즈니쉬와 그의 추종자들을 화형시키겠다는 주교의 말이 실렸다.

라즈니쉬의 측근 여성제자들인 마 암리또(Ma Amrito)와 묵타는 혹시 무슨 오해가 있을까 해서 대주교를 방문했다. 그들이 교회에 가까이 접근하자 한 사람이 소리쳤다. “너희들은 악마의 딸년들이다! 당장 나가!” 그러나 암리또와 묵타는 몇 분 동안 문가에 서서 주교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무작정 라즈니쉬를 비난하기 전에 최소한 그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없겠느냐고 주교에게 말했다. 그러나 주교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당장 이 집에서 나가!” 하고 소리 질렀다.
 
‘한고추(閑古錐)’란 선어가 있다. 닳고 달아서 끝이 무디어진 송곳이란 뜻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자재하게 돼 서슬이 가신 원숙의 경지를 가리킨다. 독설에 독설을 퍼붓기로 유명한 라즈니쉬도 젊을 때의 법문과 장년의 법문을 비교해보면 그 예봉이 많이 누그러진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2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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