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허경진 교도

[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2013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쓰기 시작한 문화코드가 100회를 맞았다. 내가 〈원불교신문〉에 문화코드를 연재할 수 있도록 추천해준 분은 지금 원불교신문에 ‘동물을 부탁해’를 연재하고 있는 채일연 교도이다. 내가 원불교대학생연합회에서 임원활동을 할 때 대학선방과 활불제 등을 함께 준비하던 교우였는데 그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음악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지역의 여성영화제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주제로 지역의 신문에 몇 개의 칼럼을 기고하고 있던 중이었으며 같은 지역 교통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1주일에 한 번 클래식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소소한 경력들을 알고 있던 채일연 교도가 나를 원불교신문사에 추천해줬고 올해로 10년째 100회의 문화코드를 쓰게 된 것이다. 

그동안 원불교신문사를 거쳐간 많은 기자들이 나를 관리해줬는데 한 8년간은 마감일을 한번도 어기지 않고 원고를 넘기다가 코로나19로 잠시 연재일이 불확실해지면서 루틴이 흔들렸다는 핑계로 마감일에서 하루 이틀 늦게 원고를 보내드려 최근까지 나를 관리해준 류현진 교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다. 

원불교신문에 기고글을 쓰며 많은 추억들이 생겼다. 지금 나는 대구에 살고 있지만 나의 고향인 마산교당에 가면 신문에 내 얼굴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교도님들이 기뻐해줬다. 소재 고갈을 핑계로 더 이상 쓰기 힘들 것 같다고 징징대던 나에게 꼭 100회까지 쓰라고 힘을 북돋아 준 이광익 교무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가 칼림바에 관한 글을 썼을 때는 퇴임한 나의 원광유치원 원장님 정성만 교무님이 연락을 줬었다. 그리고 칼림바를 배워보고 싶다고 하셔서 칼림바를 택배로 보냈고 원로원에서 교무님들과 성가를 연주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듣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100회까지 문화코드를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순타원 여순성 교도님 덕분이다. 엄마는 딸이 원불교신문에 자신의 작은 재능을 살려 조금이나마 보은할 수 있음에 엄청나게 기뻐했고 항상 누구보다 먼저 칼럼을 읽고 피드백을 해줬다. 

지금 나는 올겨울 마지막 휴가를 즐기러 아들과 경주에 와있다. 신라의 문화를 잘 보존해 전시한 경주 국립 박물관과 대릉원에서 천마총을 관람한 이후이고, 불국사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는 중이다. 경주 곳곳에 남아있는 신라의 흔적과 잘 정비된 국립 박물관을 보니 우리나라의 국격이 느껴진다. 수준 높은 문화와 그것을 잘 보존하고 즐기는 국민들이 그 나라의 국격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언제까지 이 칼럼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 문화를 보는 시각은 더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동안 한달에 한 번 이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았으며, 더 많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면을 내어준 원불교신문사에 감사하다.

/강북교당

[2022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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