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허경진 교도

[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얼마 전 출장이 있어 서울에 갔다. 점심 식사가 빨리 끝나 소화도 시킬 겸 인근을 산책하다 우연히 충정로라는 동네의 한 길목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곳은 서울역 뒤편 동네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자칫하면 그저 낙후된 동네로 보이기 쉬운 그런 동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들, 오래된 건물이나 그 건물의 창문, 벽,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풀들의 조화를 좋아한다. 그런 동네나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고 그것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동네 역시 나의 취향에 딱 맞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는 내가 요즘 심취해 있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있었는데 천장이 낮은 오래된 상점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사장님의 센스로 현대적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요즘은 모든 트렌드의 중심이 카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한 카페가 많다. 여기서 완벽하다는 것은 카페의 인테리어, 음악, 음료의 맛과 플레이팅, 바리스타의 기술 등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한다.

완벽한 카페에서 올리브유와 아이스크림이 첨가된 에스프레소 한잔을 기분 좋게 마시고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오르막길을 활용한 층고가 있는 독특한 건물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서점이었다. 이 서점을 중심으로 빵집, 소품가게, 레스토랑 등이 자리해 있었고 이들은 이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서로 연대하여 하나의 문화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어르신들과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님들이 소통하며 동네 한구석에 꾸민 정원은 소담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요즘도 새로 생겨난 신도시를 중심으로 상권이 생성되고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이 있는데 신도시는 어디를 가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 지역만의 특색있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고 그저 편리하고 깔끔하다는 이점만 가진 느낌이 있다.

요즘은 오래된 동네를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하여 트렌디하게 재구성하고 사람들에게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의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지역이 생성되고 지나온 이야기들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새로 유입된 문화와 융합돼 만들어진 스토리가 있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체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먹고 물건을 사는 것으로 즐기는 것이 아닌 공간이 가진 의미와 그 공간 속에서 지나온 시간들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의 한 채널이 있다. 한 방송국 피디는 시골마을의 폐가를 구입하여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꾸며나가고 거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채널을 통해 힐링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있는 것을 잘 지키고 조금씩 고쳐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요즘이다. 이런 도시재생공간과 채널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은 어떠한지 새로 고쳐 쓸 수 있는 것은 없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강북교당

[2022년 6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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