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교무
김종진 교무

[원불교신문=김종진 교무] 보약 중에 보혈약은 기를 보하는 보기약과 달리 혈(血)을 보하는 약이다. 보혈약의 작용을 이해하려면 현대의학의 빈혈과는 다른 한의학에서의 ‘혈허’ 개념을 알아야 한다. 한의학에서 혈은 모든 형체의 바탕이다. 기가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라면, 혈은 몸을 이루는 물질적 바탕이다. 즉 ‘혈허’는 형체의 물질적 바탕이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대표적인 보혈약이 당귀와 천궁이다.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찾을 수 있고, 한방닭백숙에도 종종 들어가는 익숙한 재료다. 당귀와 천궁은 혈액에 따뜻한 양기를 불어넣는 약재라고 본초학에 쓰여있다. 혈이 차가워지면 혈에 영양을 담기 어렵다고 본다. 또 혈의 활동성이 부족하면  혈이 온몸을 적시지 못한다고 본다. 보혈약은 직접 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혈에 영양을 담고 온몸을 적시어 모든 조직의 영양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혈허증 중 일부가 ‘철결핍성 빈혈’로 진단된다. 치료제로는 철분을 쓰는데,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부작용도 있고, 철분 흡수 능력이 약한 사람에겐 효과가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에는 비타민 C를 많이 먹으면 철분 흡수가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한방 보혈약은 비타민 C처럼 혈액 성분을 풍부하게 해주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필자의 아내가 임신 기간 중 빈혈로 몹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 쓴 처방이 ‘당귀보혈탕’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빠르게 혈색이 돌아오고 혈허의 증상들이 모두 없어졌다. 현대의학의 빈혈치료제를 썼다면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걸렸을 것이다. 근본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주는 경우 한약의 효과는 결코 느리지 않다.

현대의학에서는 진단되지 않는 훨씬 넓은 범위의 혈허증이 있다. 얼굴에 핏기는 없는데 빈혈은 아닌 사람, 몸이 비쩍 말라가는데 빈혈은 아닌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보혈약을 써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진단과 한의학의 진단은 병행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전 한국한의학연구원장

[2022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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