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명 교도
박순명 교도

[원불교신문=박순명 교도] 탐심은 과도하게 탐하여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언뜻 생각하면 법마상전급 정도 되는 공부인이 겉으로는 무슨 큰 탐심이 있겠는가 싶다. 그러나 이 계문은 공부인이 겉으로 체면을 차릴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깊이 조사해 탐심의 불씨를 발견해 보라는 뜻 같다.

탐심은 기본적으로 생존 욕구와 관련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입고 자야 살 수 있다. 더욱이 누구나 더 잘 먹고, 잘 입고, 더 안전하고 싶다. 더 나아가 이러한 안락함을 오늘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내 자손까지 누리게 하고 싶다. 이게 사유재산 제도를 바탕으로 한 중생의 합리적 마음가짐 같다. 

탐심과 반대는 대자비심일 것 같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 〈대종경〉 서품 17장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자리이타로 하시다가 못하게 되면 이해와 생사를 불고하고 남을 이롭게 한다고 하셨다. 

나도 젊을 때는 탐심보다는 부처님같은 마음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월급 중 많은 부분을 헌공 하기도 하고, 어려운 친구를 돕기도 했다. 모든 것을 바친 출가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내 마음은 그렇게 비워지지도 않고, 성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건 흉내였던 것 같다. 어느 시점에 가서는 비싼 아파트에서 빌딩 월세 받으며 사는 이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나는 현실적으로는 분명하게 경계 지워진 몸과 마음을 안고 생존해야 한다. 현실의 나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 소시민이다. 마냥 부처님처럼 계산없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소 자리에서 내 처지를 밝고 빠르게 판단하며 내 몸과 마음,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건강한 현실을 기반으로 복과 혜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것이다. 

그럼 어디까지가 부정당한 탐심이고 어디까지가 원만하고 정당하게 심신을 수호하는 것인가. 이 점이 고민이 되어 글을 한참 동안 못 썼다. 어려운 문제다. 부족하나마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법과 제도에 적정한지이다. 50원짜리 동전도 부당하게 취하려 하면 탐심이고, 50억짜리 부동산이라도 법과 절차에 맞게 취득하려 하면 그것은 탐심이 아니다. 

둘째는 분수와 처지에 맞는지이다. 세계적인 연예인이 패션과 명품가방을 들고 나타나는 것은 처지에 맞을지 모르나, 나 같은 일반인이 월급보다 과한 패션 사치를 한다면 그것은 탐심이다.

셋째는 시대와 사회통념에 적정한지이다. 과거에는 젊을 때 경제나 투자에 관심을 두는 것이 속물적이라는 시선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가 합리적이 되어서 젊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라 한다.

넷째는 자신의 뜻한 바 정당한 목적과 목표에 맞는지이다. 큰 사업을 일으켜 자리이타의 목표를 세운 사람에게는 그 사업이 탐심이 아니겠지만, 출가자가 자기사업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탐심일 것이다.  

법마상전급 정도 되면, 탐심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탐심 없이 살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심신과 가정경제를 수호하지 못하고 곤란에 빠지거나, 탐심을 눈치껏 절제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깊은 마음공부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욕구의 본질을 꿰뚫고 현실 속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해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함께 공부하면 좋은 법문 ◆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공경심을 놓지 말고, 탐한 욕심이 나거든 사자와 같이 무서워할 것이요. -〈정전〉 제3 수행편 솔성요론 7조

/김천교당

[2022년 7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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