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명 교도 
박순명 교도 

[원불교신문=박순명 교도] 진심(嗔心)은 국어사전에서 ‘왈칵 성내는 마음’이라고 하니, 이는 마음에 화와 짜증이 있는 경우다. 진심이 말과 행동으로써 겉으로 표현되는 것을 경계하는 수준은 보통급 십계문의 ‘6조 악한 말을 말며, 7조 연고없이 쟁투를 말며’에 해당된다. 그런데 법마상전급 십계문에서는 마음속으로도 화와 짜증을 내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

사실 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배고프거나 덥거나 춥거나 하여 심신이 불편할 때, 불의를 볼 때, 무시당했을 때 등 크고 작은 경계에 따라 화가 나는 것은 정직하고 건강한 반응 같다. 

다만 경계마다 어떤 이는 화가 금방 치밀고 어떤 이는 덤덤한데, 이것은 개인의 기질이나 성장경험, 건강상태, 뇌기능, 유전, 호르몬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만약 사소한 일에 반복적으로 분노해 주변을 힘들게 한다면 분노조절장애(간헐적 폭발성 장애)라는 병이다. 반대로 마땅히 분노할 자리에서 무기력하거나, 남의 눈치나 보고 있다면 그것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면 어떤 경계를 당하여 자연스럽게 나오는 진심(분노)을 수행자로서 어떻게 다루라는 말인가. 이 계문은 단순히 화를 누르라, 화를 금기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속 깊은 마음공부를 통해 그 화의 근원을 보라는 말 같다.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무시를 당했다던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우, 약자로서 갑질을 당한 경우 등 각자 겪은 억울한 상황을 떠올려 보자. 

내 마음을 가만히 본다. 억울하다. 화가 난다. 속이 터질 것 같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마음에 난리가 났다. 그 마음작용 자체에 신기함과 흥미를 느끼면서 한동안 멈춰 가만히 바라본다. 원래 없던 이 화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냉정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 어떤 때는 생각지 못하던 지혜가 솟아날 때도 있다.  

때로는 진심이 인과로 풀리는 때도 있다.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 억울함과 답답함을 내가 과거 저 사람에게 느끼게 했었나 보다. 저 사람이 빚 받으러 왔으니, 시원하게 갚아버리자.’ 이것은 부당한 일에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대응해 나가더라도 분노가 아닌 빈 마음으로 대응하라는 말이다.

때로 진심은 마음의 근원을 앎으로써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참회문에서는 공부인이 적적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고 했다. 아직 나는 가늠할 수 없는 경지다.

사실 공부가 높아질수록 진심이 나는 경계가 많아질 수 있다. 중생들이야 자기 멋대로 살면 되지만, 지도자는 신중하게 생각하기에 뜻대로 안되거나 답답한 마음도 날 것이다. 

이 계문은 그럴 때 체면치레로 고결한 척 하라는 것이 아니다. 화를 모른척 하고 부정하며 위선과 가식을 보이라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의 화를 담담하게 살펴보면서 속 깊은 마음공부를 하라는 당부인 것 같다. 분노는 마음 에너지의 한 형태다. 만약 그 에너지를 돌려 더 긍정적으로 쓸 수 있다면 더욱 마음의 고수가 될는지 모른다.   

/ 김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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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법어〉 제9 무본편 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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