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느냐. 수다원 스스로 수다원 과(果)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 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하략)”(<금강경>, 9장) 

<금강경> 9장에는 소승의 사과(四果) 혹은 성문사과(聲聞四果)가 언급된다. 성문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한 사람들을 두루 칭하는 용어가 된다. 

대승불교 이전의 소승불교 혹은 남방불교에서는 수도인의 과위를 4계단으로 설명한다. 이것이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이다. 혹은 예류(預流)·일래(一來)·불환(不還)으로 의역되었다. 아라한은 의역되지 않았는데, 구마라집 번역의 <대지도론>에서는 “아라한을 살적(殺賊), 불생(不生), 응수공양(應受供養)이라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어느 하나로 의역하기보다는 음역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대승불교의 경전으로 알려진 <금강경>에서 소승사과가 언급되는 것은 <금강경>이 대승의 초기 경전이기에 대승불교의 과위가 확립되기 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대승의 비판대상인 소승 혹은 부파불교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금강경> 9장은 과위를 얻었다는 상을 갖는다면 참된 과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곧 유득심(有得心)을 경계하는 것이니, 성취를 향한 조바심과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놓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승이 정리한 과위에도 의미가 있지만, 상이 남아 있다면 헛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원불교에도 법위등급이 있다. 법위는 공부인이 자신의 수준을 확인하고 공부의 표준을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원불교에서는 공부성적과 사업성적을 합하여 원성적을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법훈을 올리고, 공도자 숭배를 한다.

이런 성적사정은 공부와 사업을 촉진하여 이 세상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모든 제도에는 장단이 있으니, 공부·사업성적의 사정이 공부인에게 유득심, 계교심을 자극하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업 등급이 계교심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질문에 “사업을 하는 당인들에 있어서는 마땅히 무념으로 하여야만 무루의 복이 쌓이려니와 공덕을 존숭하고 표창할 처지에서는 또한 분명하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정산종사는 제1대 총결산 후에 “참다운 사정은 호리도 틀림없는 진리에 맡기고, 이번에 나타난 등급으로는 앞날의 적공에 더욱 분발할 대중만 삼자”고 했다. 부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 이 법으로 공부할 때, 성자의 본의가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후인들의 책임일 것이다. 조바심도 자부심도 없이 그저 행할 때 참다운 공부 실력이 쌓이고, 무루의 공덕을 얻을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8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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