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허경진 교도

[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폭염과 홍수가 어찌어찌 지나가고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열대야에 잠들기 힘든 더위도 입추매직에 사라진 듯하다. 입추매직은 입추가 지나면 마법처럼 시원해진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이제 곧 가을이다. 가을 하면 수확의 계절이기에 풍요로움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낙엽이 떨어지고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생각에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해 가을 탄다는 말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가을에 감상하면 좋은 음악들을 소개해 곧 다가올 가을을 기다려보고자 한다. 조금은 쓸쓸하고 애잔한 음악을 감상하며 가을 특유의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곡은 하모니카 연주곡이다. 하모니카는 예전의 포크송 가수들이 많이 사용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로 전제덕이 있다. 그는 시각장애를 음악으로 극복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서정적인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함께 가진 훌륭한 연주자인 전제덕 연주자의 모든 곡이 가을과 잘 어울리지만 그 중에서 그의 3집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멀리 있어도’를 추천한다. 재즈피아니스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듯 흐르는 하모니카 선율이 쓸쓸한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감성적인 곡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곡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음성으로 듣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다. 원곡은 그리스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가 불렀다. 소설가 신경숙이 가사를 번안했고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도 연관이 있다.

조수미의 스테디셀러 음반 ‘Only Love’에 수록된 이 곡은 번안된 한글 가사로 불려졌지만 조수미의 독보적 음색과 어딘가 한국의 정서와도 어울리는 선율이 전혀 어색함을 주지 않고,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더 음악적인 부분이 잘 전달된다. 

마지막으로 추천할 음악은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이 곡은 처음에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되었다가 후에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었다. 작곡가 라벨은 옛 시대의 스페인 궁전에서 어린 공주가 춤을 추는 모습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곡을 설명했다. 실제로 루브르박물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 ‘왕녀 마르게타의 초상’을 본 후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작곡했다. 선율선이 부드럽고 전반적으로 그리움의 정서를 담고 있는 차분한 음악으로 2박의 느리고 장중한 파반느라는 무곡 리듬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나는 얼마 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의 연주로 이 곡을 들었다. 그는 80년대 베트남 출신으로 전쟁 중에도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고 결국 쇼팽 콩쿨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묘한 감성은 8월이었지만 나에게 가을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차분하게 지난 시간을 정리하기 좋다. 계절을 충분히 느끼는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천지은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온도, 습도, 바람의 질감, 나무의 변화 등 계절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은 많이 있는데 음악 또한 그렇다.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을 감상하며 그 계절을 오롯이 느끼고 즐기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강북교당

[2022년 8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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