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교장
이진희 교장

[원불교신문=이진희 교장] 촌지(寸志)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속으로 품은 작은 뜻, 둘째,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촌지라는 말의 유래는 조선시대 서당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서당의 훈장은 동네 꼬맹이들을 모아 천자문이나 사자소학을 앞에 놓고 “하늘천 따지…공자왈…맹자왈…”을 하면서 공부를 가르쳤다. 

당시 학부모들은 전문적 교육식견도 없고 생업에 바쁘기에 훈장이 이들을 대신해서 회초리를 들고 아이들의 학업을 책임졌다. 훈장은 경제적인 일을 하지 않아 수입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런 훈장에게 아이 교육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하는 의미로, 닭이 알을 낳으면 얼른 지푸라기 달걀꾸러미에 싸서 가져다주고, 새로 찧은 쌀도 한 말 주고, 이때 겸하여 약간의 돈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교육비라는 인식이 없었기에 이러한 촌지는 가르침에 대한 소소한 보답의 의미였다. 

그러던 것이 근대화되어 학교가 설립됐고, 교사들은 봉급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촌지는 여전히 이어졌다. 식사라도 한번 하시라고, 속 썩이는 내 자식 사람 만드느라 힘든데 고기라도 사드시라고, 멀리까지 가정방문 오셨으니 차비에 쓰시라고 돈을 건네면서 말이다. 돈은 가볍고 편하고 받은 이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으니 더 요긴하다고 여기면서, 처음에는 그 액수도 소소했다. 
 

투명한 조직경영과 
합리적 인사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누군가는
악습과 적폐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담백하고 소박한 이름의 이 촌지가 포장되어 내 아이만을 위한 뇌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직업으로 확산돼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불법적 금전 수수로 이어졌다. 촌지가 당연시되면서 촌지를 주지 않은 이들은 괘씸죄에 걸려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다. 촌지가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이다.
80년대 후반 고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 일이다. 한 교사가 교직원회의에서 촌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냈다.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으면 안 된다고,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부교재 채택 시 출판사로부터 금품을 받지 말자고, 수학여행 때 여행사로부터 받는 접대를 거부해야한다고 말이다. 그때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 사람을 몰아부친 것으로 기억한다. 정치인이나 대기업에서 주고받는 뇌물에 비한다면 몇푼 되지도 않는 것 가지고 너무 융통성 없이 까칠하게 군다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눈치 없이 나선다고, 심지어 조직에서 욕을 먹을려면 저런 말을 해야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렇게 촌지는 여러 직업군에서 슬쩍 슬쩍 건네지고 몰래 몰래 주고받으며 위로 상납하는 관행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2016년, 청탁금지법이 시행되었다. 다수 교사에 반한 눈치 없는 발언으로 욕을 얻어먹고 왕따가 되었던 그 교사는 뒤늦은 이 법안에 씁쓸함을 표했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제는 금전수수에 대해 설사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직종일지라도 법의 취지를 고려하여 폭넓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공적인 기관에서는 회계 처리를 거치지 않은 금전의 수수는 불법부당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기관의 공신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도 인사권과 평가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촌지를 수수하면 안 된다. 그 촌지의 이름이 무엇이든 말이다.

처음에는 비록 정을 나누고, 감사함을 전하고, 웃사람을 모신다는 아름다운 관행이었을지라도 현재 그로 인해 투명한 조직경영과 합리적 인사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누군가는 나서서 악습과 적폐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정과 정의를 지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 하는 것이다.

/한겨레중고등학교

[2022년 10월 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