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
길도훈 교무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단전으로 자신만의 좋은 호흡을 할 수만 있어도 좌선 수행의 기초로는 충분하다. 수행해가는 데 어려움 없다. 석가모니 부처가 호흡을 바라보다 선정에 든 것보다 수행하기 훨씬 수월하니 말이다. 나머지는 정성만 들여도 되는데 문제는 수행이 무료해서 정성을 꾸준히 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상에 수행의 고수가 많지 않은 연유인가 싶다. 

의사들에게 좌선을 가르칠 때 “단전으로 자기 호흡을 할 정도면 나머지 수행은 알아서 해도 돼요”라고 했더니, 그중 한 의사가 “교무님! 우리는 이것으로 몇 년을 이어갈 수 없어요. 이어갈 소스가 필요해요”라고 했다. 많은 수행자가 선의 기초가 없어 헤매기도 하지만, 정성을 들이기에는 수행 방법이 지루해도 너무 지루한 것도 문제다. 게다가 한두 번 선정에 이르렀어도 이후 수행 길을 몰라 도중에 도태되는 것이 부지기수니 말이다. 수행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요구로 보인다. 

선의 길에서는 선의 기초 과정을 돕고 이어갈 실질적인 단계가 필요하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단전에 기운이 쌓였어도 살다 보면 일상에 매몰되어 기운이 이내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쌓지만 또 무너지기를 반복해 간다. 수행으로 빛이 떠도 이런 패턴은 다르지 않다. 이렇듯 수행이란 제자리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지루한 수행 과정을 넘어설 경우는 단전 기운과 빛 등의 향연을 맛보고, 지도자가 인정하고 주위로부터 부러운 시선을 느낄 때다. 열정이 더욱 고조되나 이것도 불지를 향한 길에서는 한 순간 반딧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현상에 대해 대산종사는 “잘되려고 하는 것이니 수행을 더욱 열심히 해”라고 했다. 선을 통해 기운이 숙성되거나 빛이 익어 깊은 선정에 상시적으로 드는 정도가 되어야 수행 길에 비로소 안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상서로운 기운인 서기가 솟곤 한다. 이 서기는 탤런트의 재능과 대중의 인기만 있어도 생기는 그런 아우라와는 다르다.

단전주선의 길이 지루해서, 수행의 기초부터 불지에 이를 수 있는 수행방법과 과정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소수 수행자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만다. 단계화된 선의 과정을 따라 수행이 켜켜이 쌓여 마음에 힘이 생기며 깊은 선정에 들 때 불지를 향한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 선정은 수행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기운, 빛, 기도 등으로 선정에 들기도 한다. 이때 “나는 단전주선이 아닌 빛 또는 기도로 선정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식을 고루 먹다가 잡채 한 젓가락에서 포만감을 느꼈다고 “잡채는 한 젓가락만 먹어도 배부르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채널로든 두루 선정에 들어야 무르익은 것이다. 현묘한 이치를 보고 아는 것도 선, 기도, 일상 등의 여러 채널로 이뤄진다.

[2022년 8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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