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주 교무
장명주 교무

[원불교신문=장명주 교무] 8월엔 늘 법인절 특별기도를 올리다 올해는 특별히 교구에서 진행하는 ‘손으로 쓰는 30일 기도’로 법문사경을 함께 했다. 

매일 사경한 노트를 사진으로 교당밴드에 공유하거나 각자 기도하듯이 사경을 했다. 모든 것은 각자가 알아서 자유롭게 했다. 사경 본문 아래 문답지가 있어 자연스럽게 매일 매일 문답을 하며 진행하는 이점도 있었다. 

글씨체가 다 다른 것처럼 사경하는 모습도 모두가 달랐다. 사경을 하며 가느다랗게 신성 하나가 어려지는 교도도 있고, 단어를 찾아가며 자세히 사경하는 교도도 있었다. 법문을 미리 써놓는 교도도 있고, 모아서 쓰는 교도도 있다. 

아침에 쓰는 교도는 거의 아침에, 저녁에 쓰는 교도는 거의 저녁에 각자가 다르게 사경을 하는데, 공통점은 점점 글씨를 더 바르게 써간다는 점이었다. 나도 글씨를 무척 날려서 쓰는 편인데, 이번 사경은 오래간만에 펜을 들고 정자로 쓰려고 많이 노력했다.

법인절에 각자의 사경노트를 불단에 올리고 회향하기로 했다. 가방에서 사경노트를 꺼내 들고 불단에 오르는 교도님들 얼굴이 미소 가득 뿌듯하다. 

불단 가득히 놓여진 사경노트들은 불단 꽃꽂이와 어울려 꽃처럼 빛이 났다. 꽉 찬 불단을 보는 순간,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함께 30일을 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법문을 받들며 생활했다는 것이 큰 장엄임을 보았다. 

계속한 것, 함께한 것은 다 힘이 있다. 서로에 대한 응원의 잔잔한 법정은 덤이었고, 작지만 서로가 쉽게 자신의 사경 과정에 대해 나누는 정진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처음 우리 교당에 온 한 교도는 사경으로 쉽게 교도들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날마다 법문을 보며 생활한 지 거의 30년 쯤 흐른 것 같다. 교리 연마를 위해서, 설교를 위해서, 동기는 자타의 계기가 있었지만, 따로 ‘경전을 봐야지’ 안 했는데 그저 물을 마시듯 경전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랬구나.
 

평상심으로 
묵상하는 마음이 편하다.
가을이다. 
더 고요할 일이다. 

그렇다. 정진은 이벤트가 아니다. 특히 우리 집 수행은 일상에서 오직 할 뿐이다. 오래 오래 한다는 의미도 역시 일상에서 익숙해지도록 많이 반복한다는 뜻이리라.

나의 일상으로 들어온 신앙 수행은 무엇이 있을까. 점검해봤다. 심고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지구 살리기가 한 줄 추가되어 거의 수시로 한다. 상시응용 주의사항 6조와 일상수행의 요법 9조가 자연스럽게 그냥 마땅한 일상이 되어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언젠가 전무출신 훈련 때 일이다. 깔깔대소회 때, 한 선진께서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이라며 “아무리 빼먹으려 해도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특갑을 했는데, 마지막이네요” 라는 소감을 발표했다. 그리고 자축공연으로 ‘모란동백’을 밝고 담담하게 부르셨다. 교역의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린 선진 교무님의 담담한 모습이 참 여유롭고 풍요롭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치열한 40대 초입이었다. 

가을이다. 이제 내 인생도 가을이다. 노안이 오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이 가을을 평상심으로 묵상하는 마음이 편하다. 

나는 내 생의 마지막엔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까. 이 가을도 우리 인생의 일상인 것처럼, 매사에, 모든 인연에, 모든 상황에 과불급 없이 평상심 정진에 밑줄을 긋고,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해본다. 

내가 극복해야 할 제일 어려운 업장소멸 하나도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스며들기를. 

가을이다. 더 고요할 일이다. 장자의 빈 배처럼.

/구로교당

[2022년 8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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