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한번 왕래함을 말함이나, 실제로는 왕래함이 없으므로 사다함이라고 이름합니다(不也 世尊 何以故 斯陀含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금강경> 9장 중)

‘사다함’은 성문사과의 두 번째 지위다. <금강경>이 발생할 때, 대중에게 해탈은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이고, 이런 인식은 중국불교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육조 혜능은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하지만, 자신의 독자적인 이해를 더해 대승의 사과(四果)를 설명했다.

혜능의 설명을 따르면 사다함은 삼계(三界)의 결박을 벗어던진 사람이다. 다만 인간과 천상에 각각 한 번씩 생(生)을 받은 뒤에 생사를 벗어나고 삼계의 업을 다 마치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소승의 해석이다. 혜능은 여기에 새로운 해석을 추가한다. “눈으로 경계를 볼 때, 마음이 한번 일어났다가 사라지되 두 번째 생멸은 없는 것을 대승의 사다함이라 한다. 또, 앞생각(前念)에서 망념이 일어나도 뒷생각(後念)에서 곧 그치고, 앞생각에서 착심이 있어도 뒷생각에서 집착을 떠나서, 실로 (망념이) 오고 감이 없으므로 이를 사다함이라고 한다”고 했다.

혜능은 망념이 한번은 일어나나 바로 챙겨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 수준, 마음에 혹 주착심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마음이 이어지지 않는 수준이 사다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천상계와 인간계를 오가는 윤회를 마음에 망념이나 착심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고, ‘신체의 윤회’를 ‘심리적 전변’의 관점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정산종사는 <금강경해>에서 보다 사실적으로 설명한다. “사다함과(斯陀含果)도 인도말이니 여기 말로 하면 그 공부가 망념이 거의 다 하여 십분에 구분은 아주 가고 일분이 아직 왕래한다는 말이다.” 앞서서 수다원은 성인의 흐름에 들어선 사람이라 하였고, 여기서 성인은 육근을 사용할 때에 주착함이 없음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런 성인의 경계에 들어서서 공부하여 10번 중의 9번은 주착함이 없고 혹 1번 정도는 망념의 거래가 있는 사람의 수준이 사다함이라는 것이다.

천상계가 실재하는지 단지 마음의 경계인지는 증명할 수 없다. 종교에는 범상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다만 앞으로의 종교는 사실적인 종교로 나아갈 것이고, 혜능 스님이나 정산종사의 풀이와 같이 사실적인 공부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 법어’를 통해 “이 원상은 눈, 귀, 코, 입, 몸, 마음을 사용할 때 쓰는 것이니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이로다”고 했다. 나의 육근 동작이 주착심 없이 온전함을 유지하는가? 90% 이상의 성공을 보인다면 사다함의 실력을 갖췄다고 할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9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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