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아나함은 ‘오지 않는다’라고 이름하지만, 실로 오지 않음이 없으므로 아나함이라고 이름합니다(阿那含名為不來,而實無不來,是故名阿那含).”(<금강경> 9장 중)

아나함은 성문사과의 세 번째 지위이다. 혜능은 “아나함은 불환(不還) 혹은 출욕(出欲)이라고 번역한다. 욕심을 벗어난다(出欲)는 것은, 밖으로 욕심나는 경계를 보지 않고 안으로 일으킬 욕심이 없어서, 반드시 욕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되었기에 이를 일러 ‘다시 오지 않는다(不來)’고 한다. 그러나 실로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도 없는 것을 일러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不還)’고 한다”고 하였다

정산종사는 “아나함과(阿那含果)는 인도 말이니 여기 말로 하면 그 공부가 망념이 다 멸하여 욕계에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고 하였고, “그 공부가 망념이 이미 멸했으니 실(實)로 이미 멸한 바가 없는 것이 참으로 이미 멸한 것이라고 하겠나이다”고 하였다. 

정산종사와 혜능의 풀이를 일대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정산종사가 말한 ‘공부에 망념이 다 멸한 것’이 혜능이 말한 ‘밖으로 욕심나는 경계를 보지 않고(外不見可欲之境) 안으로 일으킬 욕심이 없다(內無欲心可得)’는 것과 통하는 것 같다. 곧 밖으로 세상의 일에 욕망을 내지 않고, 안으로 특별한 마음의 안정이나 경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부에 망념이 다 멸한 경지’가 아닐까 한다. 이는 마음을 내지만 안으로도 밖으로도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사에 대한 욕심도 없고, 스스로 추구하는 내적 경지도 없다. 이에 망념을 완전히 끊어냈고, 끊어냈다는 생각조차 없는 경지다. 

또 아나함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불퇴전을 말하는 듯하다. 앞의 수다원과 사다함은 성인의 경계에 들어섰고 거의 모든 경계에서 부처의 마음을 내지만 혹 게을리하면 타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나함은 월등한 실력을 쌓았기에 다시는 욕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성자는 목석도인이 아닌 자비훈풍이 가득한 부처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단순히 마음을 없앤다고 하면 목석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을 잘 내면서도 상(相)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경산상사는 “아나함 정도의 공부를 하신 분은 자기 자신의 주의 주장, 영역 등을 완전히 벗어나서 세계 전체를 내 집 삼고 온 인류와 모든 생령들을 나의 권속으로 삼아서 만나는 모든 생령들을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하는 큰 성자(聖者)다”라고 했다. 상 없는 가운데 나오는 마음은 모든 생령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강조되는 무상에 바탕한 묘유의 마음일 것이다. 세속의 욕심 경계 속에서 살지만, 세속의 욕심을 떠나고, 모든 국한을 벗어나서 온 생령을 위하는 성자가 아나함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9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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